18세기 무렵 영국에서 시작한 경마는 그 후 전 세계로 퍼져 현재 120여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는 언제부터 서구식 경마가 도입되었을까.
웬만한 경마팬들도 이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문헌상으로 최초 경마는 1898년 훈련원광장(전 동대문운동장 부지)에서 열린 ‘관립외국어학교 연합운동회’에 등장한 학생 나귀경주다.
1898년 연합운동회에서 등장한 ‘당나귀 타고 달리는 것’로 당시 독립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중국어학도 조중완이 1등, 불어학도 진학유가 2등, 일어학도 홍순희가 3등으로 입상해 책상, 수첩, 연필을 상으로 받았다고 적고 있다.
독립신문은 당시 대회 광경을 “전국 남녀노소 수 만 명이 운집해 진실로 장관이다”라고 전했다.
학교 운동회에서 벌어진 나귀경주를 엄격한 의미에서 경마라고 하기엔 미흡하지만, 나귀경주는 당시 외국어학교의 교사들이었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서양의 경마를 본 따 실시한 축소판 경마였다.
외국에서도 경마는 학생경마나 조랑말 경주가 시초가 된 사례가 많다.
태국은 1897년 국왕 라마 5세가 유럽시찰을 마치고 돌아온 기념으로 학생들이 방콕시내에서 속보경마를 한 것이 시초가 되었고 홍콩도 1845년 영국인들이 시작한 조랑말 경주였다.
유감스럽게도 학생 나귀경주는 당나귀를 운동장에 끌어들이는 것이 번거로웠는지 1900년대 이후 사라졌으며 외국어학교의 연합운동회도 한일합방 후에 일제의 강압으로 중단됐다.
나귀 경주 이후 다시 처음 기록에 나타난 경마는 1907년 한강백사장에서 벌어진 기병경마인데, 조선경마협회 자료에 ‘광무 11년에 한강변에서 축전경마가 시행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