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나 경륜·경정에 도입된 베팅시스템은 ‘패리뮤추얼’(Parimutuel)이다.
이 방식은 고객이 시행체를 대상으로 돈을 거는 것이 아니라 고객 상호간의 싸움이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번호의 배당률이 끊임없이 변동한다.
지금은 익숙한 베팅 방식이지만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내기의 배당률은 고정식이었다.
시행체의 이득과 손실이 경주결과와 무관한 패리뮤추얼 방식은 ‘고정승률방식’ 보다 진보된 베팅 방식이다.
이런 획기적인 베팅 방식을 고안해낸 사람은 ‘물랭루즈’라는 카바레로 유명인사가 된 프랑스의 북메이커(사설마권업자) 요셉 올러(1839~1922)란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요셉 올러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나 어릴 때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민 왔다.
나중에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 빌바오 대학에서 공부를 했는데, 여기서 닭싸움에 매료되어 북메이커가 되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올러는 1867년 고객끼리 돈을 거는 새로운 내기 방식을 고안하는데, 이를 ‘패리뮤추얼’이라고 명명했다.
프랑스어로 ‘상호간에 서로 돈을 걸다’는 뜻인 ‘패리뮤추얼’을 올러는 프랑스 경마에 성공적으로 도입하였으나 1874년 불법적인 도박을 운영으로 15일간 감옥생활을 하고 벌금을 물었다.
당시 패리뮤추얼은 ‘신생 불법 도박’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로부터 17년 후인 1891년, 프랑스 당국은 올러의 패리뮤추얼 베팅을 합법화하고 기존의 고정승률베팅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이후 올러의 패리뮤추얼 방식은 전 세계 경마장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그러나 정작 요셉 올러를 유명인사로 만든 것은 ‘패리뮤추얼’이 아니라 ‘카바레’였다.
1876년부터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든 올러는 다양한 극장을 개장했는데 그중 1889년 개장한 ‘물랭루즈’란 카바레가 ‘캉캉춤’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물랭루즈는 전 유럽에 카바레가 번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미스탱게트, 모리스 슈발리에 같은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패리뮤추얼의 발명자이자 물랭루즈의 창업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요셉 올러는 파리 시내에 있는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