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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2000호] “사진열정 만큼은 靑春”

잡화상 아들로 태어나 부모님 기대 한몸에 받고 의사의 길로
오랜 열망이었던 사진 미련 못버려 환갑때 새로운 삶 도전장
화성박물관 옛 수원 사진 기증… 렌즈로 소통한 세상 기쁨 커

제2의 인생 도전하는 실버세대 ‘아마추어 사진작가’ 김동휘 옹

“사진은 여행을 도와주고 여행은 사진을 도와주죠”

올해 나이 91세의 의사 출신 아마추어 사진 작가인 김동휘 옹. 본업이 의사인 그는 천직을 사진작가라고 말한다.

젊었을 시절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사의 길에 들어섰지만 사진에 대한 열정만은 굽히지 않았다. 결국 김 옹은 의사를 그만두고 아마추어 사진작가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의사라는 직업의 명예와 부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 것이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 91세의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 지난 17일 부터 수원화성박물관에서 한평생 동안 자신이 촬영한 수원의 예전 생활상 등에 대한 특별 사진전을 열고 있다. 의사에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변모하기 까지 그의 삶을 따라가 보자.


수원 팔달산 기슭 촌놈이 의사가 되기까지

김 옹은 지난 1918년 현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화성행궁 인근의 잡화상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이 일대는 5~10여채의 집이 있는 촌 부락이었던 터라 김 옹은 여느 촌동네 아이 처럼 해맑게 자라났다.

김 옹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5살 때였는데 배나무 앞을 지나가던 ‘어른에게 배하나만 따주세요’ 라고 하자 자신의 옷깃을 올리고 배를 내밀더니 ‘여기 이 배 가져가라’고 했다”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수원공립보통학교(현 신풍초교)를 졸업한 그는 졸업생의 10%만이 갔다는 고등보통학교가 있는 서울로 유학을 떠난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로 현 세브란스의대(당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한 그는 1940년 졸업한 뒤 의사로의 길을 걷는다.

영하 20도 추위는 최상의 사진 작품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한 그는 북한 원산에 처음으로 부임한다. 이 곳에서 인턴으로 3년간 근무할 즈음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했다.

김 옹이 근무한 이 병원은 미국 선교사가 운영했기 때문에 병원 관계자 등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결국 김 옹은 고향인 수원으로 돌아와 병원을 개원한다.

이 곳에서 김 옹은 청진기 보다 카메라를 더 가까이 하며 본격적인 문화 예술 활동에 열정을 쏟기 시작한다.

남다른 사진 사랑 탓인지 가끔 주변 사람들로부터 간첩으로 몰리거나 미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당시 카메라는 상당한 고가 장비인데다 일반 시민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때였다. 그런데도 김 옹은 비가 억수 같이 내리면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카메라를 메고 비가오는 풍경을 찍고 다녔으니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영하 20도의 한겨울의 추위도 김 옹에게는 좋은 사진 소재였다.

한번은 라디오에서 수원의 새벽 온도가 새벽 20도를 넘겠다는 예보를 듣고는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동료들에게 연락해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새벽 6시에 영동시장을 찾아가 시장 상인들과 영하 20도의 풍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한편 그는 일제 때 수원 화성 행궁 기왓장을 뒤집어 일부러 비가 새게 만들고 전쟁 중 행궁 건축물이 피난민 땔감으로 사라지며 그나마 볼품 없어진 성벽에 주민들이 지름길을 내던 광경도 목격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환갑 지나고 제2의 인생 시작

김 옹은 환갑이 지난 64세 부터 제2의 삶을 살았다.

본업인 의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아마추어 사진작가로의 삶을 산 것이다.

이 나이때 쯤 되면 한적한 시골이나 요양원에서 평온한 노후를 보낼 만한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해외 각지를 여행하면서 그 곳의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 등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 시작했다. 이후 김 옹은 지난 97년 용인시 처인구 능원리에 한국 등잔박물관을 세우고 노환으로 7~8년전 카메라를 손에서 놓을 때 까지 전세계를 돌려 사람들의 얼굴을 필름에 담아 ‘인간 가족전’을 열기도 했다.

이 등잔박물관은 수원 화성의 주요 시설물 중 하나인 동북공심돈을 본따 지을 정도로 화성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과시했고, 주로 수원 화성과 관련된 사진 활동을 많이 폈다.

그는 특히 순수한 아마추어 작가로 활동하면서도 경기도내에서 열리는 각종 사진전에서 입상할 만큼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

반 세기 동안의 사진 사랑 결실

김 옹의 반세기가 넘는 사진 사랑은 노년이 되서야 빛을 발했다.

수원시가 시승격 60주년을 기념해 수원 화성박물관에서 특별 사진전을 기획하면서 김 옹이 젊어서 부터 찍어온 사진을 기증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김 옹은 흔쾌히 승락했고 현재 이 곳 수원 화성박물관에서는 김 옹이 기증한 50~60년대 화성의 옛 사진 86장 중 30여장이 공개돼 전시되고 있다.

김 옹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때론 취미생활로 때론 전업으로 나서면서 활동한 결과 여기 까지 이르게 된 것 같다”며 “사진을 찍으면서 그동안 많은 세상과 접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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