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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길을묻다]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박범신

기초예술 지원 문화뿌리 튼튼히 해야

 

70~80년대 문단에 새 바람을 일으켰던 영원한 ‘청년 작가’ 박범신(64)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2007년부터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현재 작가로서도 끊임없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명지대 문예창작과에서 문학계를 이끌어 나갈 젊은 인재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교편을 잡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있는 명지대로 찾아가 그의 연구실에서 만난 박범신 이사장과 대면하는 순간 문단에서 그가 왜 ‘청년 작가’라고 불리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청년 작가’ 박범신은 “나는 36년간 작가로서 살아왔다. 앞으로도 쭉 작가 박범신으로 살아가고 싶다. 지금의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직도 비(非)상근이기에, 창작 활동에 방해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수락한 것”이라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물질적인 측면에서 본 삶이 풍요로워진 반면 정신은 비인간적 구도에 갇혀 있다. 숨이 가쁜 삶, 사막같이 황폐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영혼을 보듬어줄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런 그에게 작가로서가 아닌 서울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서 그가 바라보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문제점 및 문화예술계, 특히 지역문화의 발전을 위한 나아가야할 길과 방향성에 대해 물었다.

 

 


-문화계의 리더이자 대부로서 생각하는 현 문화예술계의 문제점은?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콘텐츠는 매우 역동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그야말로 지금이 한국 문화예술계의 르네상스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자본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점점 심화되고 있다.

물론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예전부터 ‘배고픈 것’ 이란 것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꼭 배고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의 뒷받침을 받을 경우, 생산성이 더 높아질 수 있고 양질의 작품들이 탄생할 수도 있지만 돈에 이끌려 다니는 도구로 전락하게 될까 우려된다.

자본이라는 것의 속성상 돈이 되는 곳에는 더 많은 투자가 몰리게 되고, 돈이 되지 않는 곳에는 투자가 점점 사라지는 ‘문화예술 투자에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길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실제로 문화예술계에서는 기초해설 분야의 투자 미약으로 퇴보할 우려가 있다.

우리는 자본의 폭력성을 극복해야하며 자본에 예속되지 않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예술교육에서 ‘이론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는데, 문학예술계에서 이론적이고 담론적인 교육을 터부시하는 것에 대한 의견은?

▲‘이론의 중요성’에 대해 명징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예술 이론 교육에는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창작이 이론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창작은 이론을 넘어서는,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론 교육을 늘려야한다, 줄여야한다 라는 것을 딱 결론짓기는 어렵지만 기초 이론교육이나 예술사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두는 교육과 전근대적인 이론 교육은 지양해야 하며 예술 현장에서 예술을 재단하고 가두는 교육은 곤란하다.

진정 필요한 이론 교육은 작가의 상상력을 부추기고 열정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작가의 직관을 키울 수 있게 하는 교육이다.

-현 정권의 문화예술위원회의 평균 연령이 63세로 작년(54세) 보다 높아지는 등 문화예술계의 고령화가 곧 문화예술계의 보수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의견은?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행정가들이 문화예술을 대표한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으며 창작의 현장에서 그들의 중요성은 미약하다.

정부의 정책이나 행정 담당자가 우(右)편향 된다 해서 소설적 상상력과 정신이 훼손된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문화예술의 현장에서 예술가의 눈으로 볼 때 좌·우로 나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예술은 이념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한국식 좌·우 편 가르기는 옳지 않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나눠져 있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어 여전히 편협한 이데올로기적 편 가르기를 자행하고 있다.

하지만 문학에서 좌·우를 나누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좌·우를 떠나 인간이 중요함을 깨닫고 ‘인간 중심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만능엔터테이너 오스카 와일드는 “민족적 증오심은 문화를 통해 극복 가능하다”고 말했다.

간팍한 경계를 허물고, 이어내고, 소통시키는 것이 진정한 문화예술이다.

-지방 문화재단 등은 사업부진에 대한 핑계로 예산부족을 드는데 이에 대한 생각과 극복 방안은?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고 지방 문화재단의 예산 규모에 대해서도 정확한 자료가 없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향력 있는 지도층이 문화를 예술로써만 보지 말고, 사회·문화·인문 전반에 걸쳐 있는 중요한 영역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21세기에는 문화예술을 앞세우지 않고는 경제·정치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사회 발전을 위한 예술 지원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또 지방에서의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도층의 인식 전환을 위해서는 기자들이 실태를 정확히 알려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관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앞서 말했든 돈의 특성상 관에서 돈을 받으면 종속돼 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지므로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서울문화재단의 경우 1년 예산이 250~260억 규모인데 약 80% 정도를 서울시 축제관련 예산을 포함해 서울시에서 지원을 받고 있으며 나머지는 자체 자산에 의한 이자수익과 사업수익, 회원들의 회비 등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차츰 자체 충당 예산 규모를 늘릴 예정이다.

지방 문화재단들도 시민들과 기업들의 기부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자체 사업을 기획하는 등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지역문화 및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문화예술은 제한하거나 방향성을 명백히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며 오히려 망치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예술가들이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시장을 넓히는 일만 해야 하며 그 이외의 것들은 온당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평소 강의에서도 학생들에게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는다.

자연에서 생태계가 가진 것을 존중하고 자연 발화할 수 있게 하듯, 문화예술계에서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책 읽는 국민이 돼주십시오.

소위 활자문화, 기초인문학, 기초예술분야 등에는 관도 사회도 관심을 주지 않고 흥행성 있는 분야에만 돈과 인재가 몰리고 있다.

자본이 몰리는 분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추가적 투자해 지속적으로 판을 키우지 말고, 돈은 안 되지만 근간이 되는 농업계에서 ‘쌀’과 같은 존재인 활자문화, 기초인문학, 기초예술분야 등을 장기적 관점에서 보고 투자하고 지원해야 한다.

영상문화를 기초로 하는 한류는 일시적인 광풍일 뿐이며 언제 꺼질지 모르는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소외되고 있는 기초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지원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서울문화재단의 박범신 이사장은 인터뷰를 마치고는 다시금 ‘청년 작가’ 박범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어제 후배 작가의 책 출간 기념회에 갔다가 술이 과했다. 어린 친구들 비위를 맞추느라 힘 들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나는 문학가고 작가다. 예전 70~80년대를 주름잡은 그때가 그립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1993년 절필 이후 다시 펜을 잡은 1996년부터 자유롭게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이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 “다시 펜을 든 그때 ‘촐라체’라는 작품을 통해 인터넷 소설 연재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후배 작가들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준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며 “곧 늙은 시인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새 작품으로 독자들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을 마쳤다.

/대담 = 이민상 논설위원, /사진=하태황기자

 

박범신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은?
   
現)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46년 충남 논산 출생
▲전주교육대 졸업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여름의 잔해' 당선
▲1987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98년 원광문학상 수상
▲2001년 김동리문학상 수상
▲2003년 만해문학상 수상
▲前 KBS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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