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채 삶에 지친 사람 감싸안는 ‘초록빛 활력소’
올해 경기도 농업전문경영인으로 선정된 이권후(53) 원덕농원(양평군 양평읍 원덕리 252-3) 대표. 그의 작목 분야는 다름 아닌 쌈채다.
쌈채란 ‘쌈싸서 먹는 채소 종류’ 등을 일컫는 말로 쌈채의 종류만 해도 수십여 가지가 넘는다.
국철 1호선 중앙선 원덕역에서 내리면 그의 쌈채 비닐하우스가 눈에 띈다. 6월 초인데도 무더운 여름 날씨 탓인지 비닐하우스는 이미 찜통이다.
이 대표를 만나러 간 날 그는 지역 농협에 쌈채 50상자를 대느라 여념이 없었다. 악수를 청하고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의 인상은 영락 없는 지도자감 같았다.
흙 냄새와 채소의 틈바구니 속에 밥줄을 잇기 위해 그가 흘리는 땀방울은 겉으론 그의 외모를 농사꾼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짙은 눈썹과 카리스마 한 인상은 7,80년대 새마을 지도자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 대표의 농원은 추읍산 길목에 있다. 그의 집 옆길로는 강을 끼며 하루에도 수 백 명의 등산객 손님들이 지나가는 코스다.
그의 농원과 추읍산이 얽힌 스토리를 들어봤다. 추읍산은 산의 형상이 용문산을 향해 엎드려 절을 하고 있는 모습을 갖고 있다. 뭉툭한 산세가 특이해 추읍산을 배경으로 화가들이 그린 그림도 많다고 한다. 그의 농원 길 대부분이 그렇듯 추읍산 길은 흙길이기 때문에 원덕역에서 내려 가족 단위 산행에 적격이다. 또 하산 길에는 산수유 마을을 둘러 볼 수도 있다. 원덕역 부근에서 그의 농원을 지나 바로 등산로와 연결되며 정상(583m)까지 왕복 4시간 정도 걸린다.
이 정도면 추읍산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됐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의 농원에 사람이 드나들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추읍산이 활성화 될 무렵이라는 점이다. 쌈채라는 것도 원래 소비가 있어야 지속적으로 생산된다. 친환경 특구인 양평, 그 중에서도 가장 구석에 자리한 이 대표의 마을은 사실 전철역이 개통되기 전이나 지난 2000년대 초만 해도 오지에 가까웠다. 그런 이곳이 추읍산 등산로가 활성화 되고 웰빙 바람이 불면서 비로소 그에게도 희망이 찾아 왔다. 사람이 드나들면 입소문이 퍼지고 자연히 쌈채에 대한 인식이 넓어져 수요가 창출되는 원리에 다름 아니다.
그가 처음 이곳 원덕리에 터를 잡은 건 지난 1984년 때다. 당시 처음으로 수막시설을 설치해 쌈채 재배를 시작했다. 그 후 22개 쌈채 농가를 중심으로 연구회를 만들었다. 또 영농기계화단지도 조성했다. 이 기계화 영농의 실천에 이 대표가 앞장서면서 쌈채 연구회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진 것이다. 원래 이 대표가 있던 마을은 상추 재배 단일 품목만 취급했다. 하지만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무농약과 유기 인증을 획득해 연구회 농가들이 뭉쳐 현재 양평유통공사와 농협 연합 사업단에 쌈채를 전량 출하하고 있다.
이와 함께 양평군농업기술센터와도 손잡고 쌈채 재배에 있어 농업미생물, BMW활성수 등을 병해충 예방을 위해 무료로 지원받고 있다.
그의 농원 내 17개 쌈채 비닐하우스에 심겨진 토양도 쌈채가 생육하는 데 중요하다. 이 대표는 “토양검정을 통해 정확한 토양 처방을 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처방에 따라 시비도 달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하우스 필지 별로 나누어 1년 주기로 심토 파쇄기를 이용하는 데 이것이 경반층을 파괴하고 염류 장애와 물빠짐을 원활하게 돕는다. 또 등록고시된 유기질 퇴비만 밑거름으로 사용한다. 반드시. 이는 심근성 작물 등을 윤작함에 있어 연작장해를 최소화 시키는데 유용하다.
이 대표의 농원은 또 나머지 21개 쌈채 농가와도 유기적으로 결합해 쌈채 공동 브랜드와 상표, 포장지까지 같이 쓴다. 이름하여 위드미(WITHME)다. 나와 함께라는 말인데 여기서 쌈채가 나라는 뜻인지 주체가 혼동됐지만 이 대표는 바로 쌈채를 즐겨 애용하는 건강한 시민이라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맞는 말이다. 육류 중심의 탄소 배출 지향적 삶보다는 이제는 유기농 저탄소 녹색 라이프 패턴이 각광받는 시대다.
그의 쌈채 사랑은 바로 자신에서부터 출발해 쌈채 보급과 확산을 통한 지구 살리기에 큰 뜻이 있었다. 쌈채 사랑이 지구를 구한다고? 혹자는 회의적이겠지만 화석 연료와 육류 섭취가 주류를 이루는 산업화 근대화 과정을 거쳐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조에 있어선 획일적 규격화된 삶보다는 개성적이고 자유분방만 삶의 양식이 주류를 이룬다. 이 때 쌈채의 특징이 잘 결합된다. 쌈이 함께 모듬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채소들을 함께 모아 섭취한다는건 분명 건강은 물론 우리 농촌을 살리는 데도 긍정적이다.
이 대표는 자신의 농원에서 자라는 쌈채를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길 희망하고 있다. 쌈채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생계와 건강은 물론 이웃과 지역공동체, 더 나아가 파편화된 포스트모더니즘적 개인 관계를 공동으로 묶고 연대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아교의 역할 같은 것 말이다.
이 대표에겐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 아내가 된 평생 동반자 민영실(52)씨가 있다. 두 사람의 조합은 겉으론 언뜻 부조화해 보였지만 농부의 아내로서 민씨는 최고라는 게 남편 이 대표의 생각이다.
아내 민씨는 “지금까지 쌈채로 충분히 자식교육과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여기서 더 이상 돈을 더 벌면 남편을 잃을까 겁난다”고 말했다. 아내에겐 남편은 없어선 안될 존재다. 특히 추읍산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이 대표의 집과 농원은 쌈채 음식점을 한다면 최적지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욕심이 없다. 돈을 더 번다면 그 땐 오히려 풍족해서 불행이 따를 것이란 게 이들 부부의 설명이다.
추읍산 자락에 있는 이 대표의 농원은 지금도 앞으로도 쌈채만 전문적으로 재배해 우리 식탁에 공급할 것이다. 쌈채의 본래 의미처럼 원덕역 추읍산에서 자라는 쌈채가 경쟁과 스트레스, 복잡한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소가 될 것으로 이 대표는 확신했다.
추천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 대표의 농원은 쌈채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찾아가도 좋다. 이 대표의 전언이다.
원덕농원: ☎(031)772-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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