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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복원, 백성과 소통하는 방식 이끌어내다

수원화성박물관 김준혁 박사

짧은 집권시기에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며 노련한 정치를 펼쳤던 왕이자, 기구한 운명을 타고나 외롭게 생을 마감한 조선조 제22대 임금 정조 이산. 김준혁(43·수원화성박물관) 박사는 정조대왕에 대해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와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훌륭한 군왕이었지만 매우 불행한 남자였다고 평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가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 한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연구하고 조명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 이산을 만나게 하고, 시대와 통하게 하는 이가 있다. 김준혁 박사를 만나 조선시대 어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역사 이야기를 나눴다.

 

 


“정조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8일간 평민으로 살기도 했다. 곰보투성이인 아내를 맞았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에 관여했으며, 할머니는 자신을 죽이려 했다. 정치적 이유로 결혼해야 했으니 사랑도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의문사 했고, 절친 홍국영은 조선을 손에 쥘 야욕을 품고 있었으니 그의 인간적 고뇌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연구는 분명히 사료를 근거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에의 이해 없이는 쉽게 정리되지 않을 부분까지도 명료하게 일러준다. 얼마 전 정조의 파란만장한 인생기를 다룬 드라마 ‘이산’은 정조 임금이 펼쳐나가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에 대한 업적과 흥미있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김준혁 박사는 드라마 ‘이산’의 역사 자문 역할을 하며 대중에게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와 훌륭한 정책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산’이 적절한 연출과 더불어 주요사건, 정치 행위를 놓치지 않고 진중하게 다룬 드라마로 호평을 받은 데 일조한 것.

김 박사가 정조의 삶을 깊이 연구하는 소장학자로 인정받는 것은 그의 끈질긴 연구 열정은 물론, 역사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삶에 깊숙이 녹아났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던 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 틈이 날 때마다 역사 이야기를 해주셨다. 파장동에서 연무초등학교를 오가는 등·하교하는 길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서 듣던 역사 이야기는 그의 오늘날에 비옥한 토양이 됐다. 아버지께서 보시던 신동아, 한국인 등의 잡지를 틈날 때마다 읽은 것도 역사·정치 의식을 키우는데 도움을 줬다. 또 초등학교 3학년 당시 진보 성향 교사로 해직을 당한 부친을 따라 백령도로 온 가족이 옮겨가게 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던 시간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은 폐교되고 없는 남포초등학교는 서해 5도 어린이 도서 제공 및 무상급식 정책에 따라 최고의 과학기자재는 물론 손에 꼽히는 장서를 보유하고 있었다. 배타적인 섬사람들의 성향은 어린 나에게 넘기 어려운 벽이었고, 전기도 없어 나무를 해다 불을 때야 했던 시골이었던 터라 마땅히 시간을 보낼 것이 없기도 했다.”

책과 벗하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섬기며 어린 시절을 보낸 김 박사는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의 청년기는 최루탄 가스로 찼던 시대로 점철된다. 대학에 다니면서는 학생운동을 했고, 기침하듯 세상에 내던져지면서 문화·통일 관련 시민 단체에서 일하기도 했다.

“시민단체에서 무보수로 일하면서 결혼을 했는데 그때 아내는 나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인생의 전환기는 아내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큰아이를 갖게 됐을 무렵 아내는 10~20년 뒤 전문가들이 사회를 움직이는 시대가 올 거라 충고했다. 어떤 목표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길에 들어서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대학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2.5점 대의 학부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서 혹은 하고자 하는 일의 성취를 위해서라도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대학원에 들어간 그는 항일 독립 운동사를 정리하려 했지만, 서울대학교와의 학과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규장각에 들어간다. 김 박사가 정조를 만난 시점이다.

“1799년(정조 23) 편찬된 범우고(梵宇攷)라는 사찰 기록문을 보던 중 억불숭유의 정조 때 사찰을 관리하고 불교를 수용했던 기록을 보게 됐다. 사찰의 역사, 스님, 사찰의 규모 등이 다 담겨 있었다. 그 발견을 계기로 ‘정조 불교수용정책’ 관련 석사논문을 쓰게 됐다. 정조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던 시기에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는 박사 과정에서도 정조시대 정치사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또 정치적 식견, 경제적 차별 등 세상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정조를 이해하기에 이른다. 사회 현상은 정치적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정조의 개혁정치, 위민정책은 그를 자극했고, 정조를 시대의 모델로 세우는데 일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어 수원 행궁 복원과 함께 2003년부터 수원시 학예연구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화성관리사무소 화성행궁계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책을 통해 정조를 알리는 일에도 힘을 쏟는다.

그의 최근 저서 ‘이산 정조’는 정조의 개혁정책과 그 개혁의 완성인 화성에 대해 옛날이야기를 하듯 흥미롭게 풀어내 독자의 지적 갈증을 풀어준다. 또 정조 즉위 직후 국왕 시해 사건과 정조의 독살설에 대해 정확한 사료를 통해 분석하는 한편 드라마에 나오는 ‘송연’이라는 여인이 도화서 다모가 아니라 실제 정조의 여인이었고 그녀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등의 흥미로운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인간 정조에 대한 무한한 관심, 학자로서의 연구 등은 수원 화성 복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 큰 틀에서는 어느 정도 복원이 이뤄졌고, 완벽을 기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기도 한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복원, 수원천변을 문화의 거리로 만드는 등의 콘텐츠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뿐 아니라 정조의 정신을 많은 이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화성은 반드시 완벽에 가까운 복원이 돼야 한다. 정조는 ‘호호부실, 인인화락(戶戶富實, 人人和樂-집집 마다 부유하게 하고, 사람마다 즐겁게 하라)’의 정책을 추구했다. 행궁의 문을 항시 열어둬 온 백성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것만 봐도 정조의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그의 신념을 확인할 수 있다. 화성이 완벽 복원된다면 이처럼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현재 김 박사는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를 바탕으로 현재 정조의 8일간 화성 행차와 관련된 책을 집필하고 있다. 남녀 차별 없었고, 100% 조선의 악기로 왕실 음악 문화를 형성했던 그때의 모습을 글로 옮겨 올해 말 출간할 예정이다. 또 내년 초에는 경기도 전쟁의 역사를 다룬 책을 펴낼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 딱딱한 역사가 아닌 진정성을 바탕으로 흥미를 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정조와의 우연한 만남, 시대와 발을 맞춘 그의 행보, 연구에 대한 끈질긴 집념을 보고 있노라면 학자나 공직자로서의 김준혁이 아닌 인간 김준혁에 가까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의 인생과 연구, 글 곳곳에 그만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것은 아닐까. 누구든 그와 마주하면 인생, 철학, 열정 속에 숨 쉬는 정조를 만날 수 있다.

약 력

-수원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

-중앙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에서 ‘조선 정조대 장용영 연구’로 박사 학위

-현 수원시 학예연구사, 경기지역 역사연구소 연구원, 화성연구회 이사

-저서 ‘정조, 이산 새로운 조선을 디자인하다’, ‘정조의 꿈이 담긴 조선 최초의 신도시 수원 화성’, ‘알기쉬운 화성 이야기’ 등

공저 ‘우리 고장 수원’, ‘우리 전통문화와의 만남’, ‘강좌 한국사’ 등

역서 ‘수원하지초록’과 정조 관련 논문 ‘조선 후기 정조의 불교정책’, ‘정조대 장용위 창건의 정치적 추이’, ‘정조대 무예도보통지 편찬 의도와 장용영강화’, ‘정조대 군제개혁과 수총양영 혁파’ 등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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