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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농업경영인]22. 새농민농장 김용덕 대표

 

그 시절 서울은 누구에게나 동경의 대상이다.

“출세하고 싶은 자 다 내게(서울)로 오라. 그러면 모두 다 잘 먹고 잘 살게 해 줄 것이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느 개그 코너의 대사를 흉내내봤다.

오늘날 서울은 농촌에게 진 빚이 크다. 경제력과 문화 인프라의 집중화 등 모든 자본이 서울로 쏠려 있다. 뉴타운 광풍으로 서울에서 쫓겨난 원주민들, 전세 보증금이 부족해 서울에서 밀려난 서민들은 서울에 입성을 못해 경기도로 밀려났다.

도대체 서울에서의 삶이 무엇이길래, 서울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시골 농촌 출신들은 서울을 우러러봤을까. 이들 가운데 혈혈단신으로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살아온 사람들은 성공했다. 그나마 서울 강남3구는 아니더라도 외곽에 30평대 아파트 한 채씩은 갖고 있다. 또 중형 자가용과 어느 정도의 여유는 갖췄다.

이제 이들은 그 옛날 자신의 부모와 부모의 부모, 선조들이 대지에서 땀 흘리며 거둔 흙의 열매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까마득히 잊은 듯하다.

“배가 부르면 생각이 어두워지고 죄악이 들어섭니다” 지난 달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에서 주인공 유해국(박해일)의 아버지 류목형 역을 한 배우 허준오 씨의 대사가 떠오른다.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는 매일매일 거짓과 죄 속에서 살아간다. 일부는 반성하고 성찰한다. 그것도 종교의 이름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대다수는 어떨까.

자신이 사는 그곳 서울(수도권)이 사실은 온실가스를 내뿜으며 소비하고 욕망하고 탐욕하는 가운데 순수했던 농촌공동체, 그곳의 유토피아는 더 이상 없다.

이 땅 도시의 디스토피아는 반생명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무엇이 유토피아고 디스토피아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정치판의 정치꾼들처럼 거짓말과 탈법에 속임수까지 동원해 그저 돈 많이 벌고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다. 그것이 현재 도시에서 통용되는 가치의 전부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이제 순수를 잃어버렸다. 인간이 인간으로 보이질 않는다. 거래되고 상품화되는 객체일 뿐. 인격 대 인격으로 인정되는 그런 도시는 머나먼 이상향인가.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612 일원 3만5천여㎡에서 참나물 농장을 10년 째 해온 김용덕(62) 대표는 순수함을 유지해온 도시 농업인이다.

전북 김제 드넓은 평야지대가 고향인 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들녘에서 자라나는 벼를 보며 지는 해를 보고 농촌이 주는 감사함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도시는 그런 공간이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발 딛는 곳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고 꿈꾸는 그곳 말이다. 그에겐 교만과 허풍, 거만함이 없었다. 참나물 재배로 연간 수익만 3억 원을 올리는 김 대표지만 그는 검소함 옷차림 그 자체다.

그를 만난 날도 장마 비가 한가득 왔지만 마지막까지 인터뷰를 하고 간 기자를 위해 직접 버스정류장까지 차를 달려 배웅해주는 배려심도 깊었다.

“세상에서 출세하는 게 돈을 버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자신이 성실하게 한 우물을 파고 정직하게 살다보면 저절로 굴러들어오지요”

그의 현실성 없는 이상론에 잠시 반론성 질문을 해보고 싶었지만 이내 접었다. 김 대표의 눈매는 그야말로 순한 양 같았다. 그런 눈매 안 마음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순수함이 짙게 묻어났다.

김 대표도 소위 출세라는 걸 위해 19살에 고향 김제를 박차고 나왔다. 당시 서울행 열차 객실에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무엇인가 저마다의 꿈을 위해 기차를 타고 있었다. 여의도 한강대교를 지나 용산역, 다시 서울역까지 그가 본 서울의 모습은 김제와는 너무나 달랐다.

“서울에 무엇인가를 하려고 왔는데 막상 와보니 정말 앞길이 어둡기만 했어요”

그랬다. 그 시절 서울은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자, 성실하게 노력만 하면 출생지, 학벌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다.

그런 그가 그나마 믿었던 대상은 큰 누나였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1시간여 버스를 타고 서울 이문동 지금의 한국외국어대학교(구 휘경역)에서 내렸다.

누나는 그곳에서 매형과 함께 야채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일을 배운 건 이때부터다. 새벽이면 청량리 도매시장으로 가 야채를 팔았다. 20대 때 김 대표의 인생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다. 그래서 그가 시작한 건 화물차를 마련해 전국을 돌며 무와 배추 등 도매를 하는 일이였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 시절 20~30대는 좌충우돌의 시대였다. 지금의 아내 김점순(58) 씨를 만난 것도 이문동 외국어대 근처 이문시장에 있는 한 식당에서였다.

“사람의 인연은 누구도 모릅니다. 그저 고향을 떠났으니 저의 운명은 제가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당시 누나 가계에서 작업을 하다가 배고프면 자주 들렀던 곳에서 아내를 만날 줄 꿈에도 몰랐죠”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 두 명이 태어났다. 변리사인 큰 아들 김춘곤(36) 씨와 홍익대 광고멀티미디어 박사과정에 있는 김진곤(33) 씨다.

그런데 김 대표에겐 고민이 있다. 두 아들이 농사일에는 소질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꿈은 정말 소박했다. 어쩌면 경기도농업전문경영인에 선정된 모든 농업경영인에겐 당연한 과정인데 그에겐 꿈이라니. 잘난 아들을 두어서 그런가. 영농후계자를 두는 게 꿈이라니 말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쉽지 않을 꺼 같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두 아들 중 누구라도 농사일을 하겠다고 하면 농장을 물려 줄 것입니다”

김 대표의 소박한 꿈은 이루어 질 것이다. 그가 남양주 땅에 흘려온 땀방울이 결실 되어 언젠가 아들 두 명이 서로 참나물 농장을 이루겠다고 김 대표는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 핏줄이자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모두가 알아 줄 것입니다”

장마비가 내리는 7월의 마지막 날 오후 그의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탐스럽게 자라고 있는 참나물이 김 대표를 보며 웃는 듯 평화로워 보였다.(새농민농장 ☎031-571-1519)

리콜제도 실시·친환경 인증 소비자신뢰 Up 경쟁력 강화

- 참나물이 웰빙 대표 채소로 각광받는 이유.

▲ 농장에서 자라는 참나물은 일본 미쓰바종으로 종자를 대부분 수입해서 쓴다. 그래서 투자 비용은 들지만 국내 수요가 많다. 가정에서는 된장국과 무침, 겉저리 등에 쓰인다. 또한 참나물 연구회 차원에서 끝임없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참나물은 가격 변동이 없고 소비성이 높아 농장으로선 부담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 농장의 특징은 무엇인가.

▲ 참나물 리콜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남양주 참나물 브랜드로 소비자 신뢰를 높일 수 있었다. 밀기울을 사용해 시설하우스 연작 장해 예방으로 친환경 농업을 이룬 게 특징이다. 또한 고품질 친환경농산물 생산을 위해 농업경영컨설팅으로 생산비도 절감했다. 특히 친환경 인증을 받아 경쟁력을 높인 게 주요했다.

- 60평생 살아오면서 후회되는게 있다면.

▲ 현재 여동생을 제외하면 가족 모두가 남양주에 모였다. 함께 교류하며 주말이면 만난다. 그것이 행복 아니겠는가. 하지만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95세까지 장수하셨지만 그 동안 참나물을 키우느라 김제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했다. 자식으로서 너무 죄스럽다.

- 향후 농장 운영 계획은.

▲ 우선 지난 10년 간 참나물만을 재배해와 땅의 거름기가 떨어진게 사실이다. 토양계량사업을 실시해 친환경 농업의 상징으로 참나물 등 유기농산물을 생산할 것이다. 채소 등 나물 수요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농장에서 자라나는 참나물을 경기도, 전국에서 1등 품질의 농산물을 가꾸어 생산 보급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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