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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風寒 이겨내고 뿌리내린 독도 야생화

/글·사진=진종구 FL환경안보아카데미 원장

독도(獨島)는 우리 국토의 막내라고 흔히 부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섬들 중 사실상 맏형이다. 울릉도와 제주도보다 훨씬 먼저 생성된 독도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동쪽 최전선, 즉 프론트라인(the Front Line)이다. 우리나라의 최전선에 첫발을 내딛는 내 마음은 벌써 설레기 시작한다. 독도의 식물탐사를 위해 독도에 들어간 날은 11월 중순이었다.

/글·사진=진종구 FL환경안보아카데미 원장

 

 

 

 

■ 서도

대구지방환경청과 함께 하는 독도탐사단원의 일원으로 울릉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3시간여를 달린 끝에 울릉도에 하선하여 곧바로 독도행 여객선으로 옮겨 탔다. 독도에 도착하면 서도의 식물을 살펴 본 후 다음 날 동도를 탐사할 계획이다. 동도선착장에서 우리 탐사단원들은 고무보트를 이용, 서도로 건너갔다.

독도는 크게 동도와 서도로 나뉜다. 관광객들은 동도 선착장에 내려 20여분의 짧은 시간 동안 분주하게 사진을 찍으며 족적을 남긴다. 동도는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여 독도경비대와 등대가 있으나 서도에는 어민숙소만 외롭게 있을 뿐이다. 서도는 관광객의 접근이 용인되지 않고 생태계 조사 등 공적인 활동만 허용된다.

서도의 서쪽 끝에는 천연동굴의 바위틈에서 조금씩 스며나오는 물골이 있다. 물골 동굴 벽면에는 독도 유일의 양치식물 도깨비쇠고비가 습기를 머금은 무성한 잎을 선보인다. 2개의 저수조에는 깨끗한 물이 찰랑거렸다. 짜지 않아 충분히 마실 수 있는 물이다. 물골에서부터 가파른 계단을 타고 기다시피 올랐다. 그리고 반대편인 동쪽 골짜기 사이로 놓여진 계단을 통해 어민숙소까지 내려가는 데는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평균 경사도가 80°에 이른다니 얼마나 힘들지는 상상할 수 있으리라. 그나마 작년 태풍으로 나무계단이 군데군데 파손돼 위험하기 짝이 없다.

서도의 가을은 갯제비쑥과 함께 시작되고, 동도의 가을은 해국과 더불어 시작된다. 서도 계단 끝 정점에 이르자 석양빛에 벌겋게 물들은 물피가 갯바람에 출렁인다. 그 곁을 지키는 갯제비쑥은 둥글게 몸을 움츠려 흐르는 세월을 애타게 붙잡는 듯 기묘한 모습이다.

독도는 대양섬(oceanic island)이다. 외부의 어느 곳과도 연결된 적이 없다. 그러니 독도에 들어온 식물은 외부의 간섭 없이 독자적인 진화를 거듭해 나간다. 그렇게 향상진화(向上進化)를 거듭하여 독도의 갯제비쑥은 독특한 모습으로 변했다. 뿌리 근처의 잎사귀는 넓고 크며, 중간 줄기는 나무처럼 변했고, 줄기 끝부분은 좁고 가는 잎으로 진화했다. 마치 3개체가 1개체로 통합된 듯하다. 정상을 돌아 어민숙소로 내려가는 계단은 너무도 가파른지라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날 서도에서 확인한 식물은 도깨비쇠고비, 번행초, 까마중, 명아주, 해국, 왕호장근, 갯까치수영, 왕김의털, 갯괴불주머니, 소리쟁이, 마디풀, 물피, 갯제비쑥 등 13종(種)이었다.

늦은 밤 독도의 밤하늘은 찬란하다 못해 눈이 부시다. 동도의 등대 불빛이 검푸른 바다로 퍼져 나가고, 웬만해서는 보기 어렵다는 별들이 하늘을 총총히 수놓는다. 계단 중턱에 걸터앉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이 처럼 즐거울 수 없다. 물골의 물을 한 잔 마시고, 기묘한 생김새의 갯제비쑥에 감탄하며, 아름다운 동도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는 나는 행복한 남자다.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면 근접조차 할 수 없어 험하기로 소문난 뱃길, 1년 중 50일 정도만 접안이 가능하다는 곳, 그래서 삼대(三代)가 공덕(功德)을 쌓아야만 갈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발 디디기 어려운 섬, 그곳이 바로 동해의 외로운 섬 독도다. 독도 탐사 이틀 째 날이 밝았다. 이제 동도로 가야 한다. 어떤 식물이 우리를 맞아 주려나?

■동도

고무보트를 타고 동도로 옮겨왔다. 동도에는 연보랏빛 해국이 만개하여 오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해국과 땅채송화는 독도의 개척종 식물로 일찍이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끈질긴 생명력을 영위해 왔다. 지난 2009년 대구지방환경청과 영남대 박선주 교수팀은 해국의 유전자 염기서열(DNA)을 분석하여 해국의 기원이 독도와 울릉도라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일본 서해에 자생하는 해국들도 해류를 타고 전파된 것이다. 독도의 영토주권 이외에도 식물의 생태주권까지 확보한 쾌거다.

서도는 물론 동도도 역시 경사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가파르기는 마찬가지다. 정상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을 벗어나서는 식물탐사를 할 수 없다. 계단을 벗어난다는 것은 곧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5~6월 독도의 하늘은 온통 괭이갈매기 천지였다. 그러나 스산한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인 지금, 갈매기를 비롯한 대부분의 새들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독도는 철새들이 번식을 위해 찾아오거나 머나먼 바다를 날아온 새들의 중간피난처이다. 독도를 찾아오는 조류는 100여 종으로 그 중 약 80%가 철새다. 이제 철새들이 되돌아가는 가을이 되었으니 독도는 새들의 구원섬(Rescue island)역할을 다한 것이다.

군데군데 철 늦게 피어난 술패랭이는 독도를 대표하는 해국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가까이에서 사진촬영을 하다 보니 술패랭이꽃의 빛깔과 모양이 약간씩 다른 것 같다. 하기야 기후와 토양에 따라 꽃도 진화를 거듭했으리니 어찌 모든 것이 동일할 수 있겠는가. 정상에 위치한 독도경비대 숙소 옆 금강아지풀과 어우러진 ‘한국령(韓國領)’ 바위는 우리 가슴에 왠지 모를 애국심을 돋운다.

1박2일 둘째 날 독도에서 발견된 식물 54종 중 우리 탐사팀이 동도에서 발견한 초본식물은 도깨비쇠고비, 갯까치수영, 갯사상자, 해국, 땅채송화, 술패랭이, 바랭이, 개밀, 방가지똥, 쇠무릎, 소리쟁이, 섬장대, 박주가리, 달개비, 참억새, 쑥, 금강아지풀 등 18종이었다. 그리고 목본식물인 댕댕이덩굴과 사철나무도 발견했다. 독도의 식물생태가 무분별한 외부 침입종에 의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1박2일 독도 식물탐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배 안에서 다시 독도를 뒤돌아본다. 우리 국민 중 과연 몇 %가 독도에서 1박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구호를 외친다. “언제는 독도가 우리 땅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우리의 땅이었다.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새삼스럽게 우리 땅이라고 외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대신 “나는 독도를 사랑한다.”라고 머릿속에 되뇌어 본다.

■ 진종구 원장은 누구?

전북 김제 출생으로 영문학과 국제정치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지구 환경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비무장지대(DMZ)의 생태환경에 관심을 갖게 돼 민간인출입통제선 부근과 우리나라 끝단에 있는 섬의 야생화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사진작가, 생태작가, 여행작가, 향토사학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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