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절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발행해 사용하다 혼쭐이 난적이 있다. 10여장이 넘는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고생을 한 경험도 있다. 그 심상치 않은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신용카드사의 대출 증가세가 도를 넘어선 듯 하다. 금융당국의 과열경쟁 억제책에도 지난해 카드사와 할부금융사의 가계대출이 은행의 대출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이들 여신전문기관의 대출 잔액이 올해 상반기에 4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카드대출과 할부금융은 주로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이 이용한다. 금리는 은행 대출보다 훨씬 높다. 부실 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카드대출의 급증세를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은 전체 가계부채의 취약성 때문이다. 9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된지 오래다. 카드부채가 그 뇌관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2011년 3분기 말 여신전문기관(신용카드사+할부금융사)의 가계대출 잔액은 38조2천억원을 기록했다. 2003년 ‘카드대란’ 때와 비슷한 규모다. 여신전문기관의 가계대출은 2010년 이후 두자릿 수의 높은 증가율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는 분기별로 10∼14%대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 6%정도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가파른 증가세다. 연체율도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문제는 카드대출이나 할부금융의 이용자 대부분이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고금리로 내몰린 저신용자와 저소득층이라는 점이다. 2011년 가계금융조사를 보면 소득 하위 20%의 카드부채는 평균 122만원으로 소득 상위 20%보다 두 배나 많았다. 카드사들의 현금서비스는 최고 20%대 후반에 달하는 금리를 물리고 카드론의 이자도 평균 16%안팎에 달한다.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 이들 취약계층은 이자를 제때 못내거나 원금 상환불능의 상태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카드 빚을 쓰는 서민은 여러 곳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가 많다. 카드부실이 가계 빚 대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2003년 카드대란으로 금융권은 물론 한국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신용불량자가 400만명 가까이 양산되기도 했다. 카드업계에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음은 물론이다. 카드사들은 지금 수익성과 건전성 등이 카드대란 당시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호하다고 한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카드사들의 무분별한 카드발급과 대출경쟁을 실질적으로 억제하지 않는한 부실 위험성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