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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詩산책]沙平驛에서

 


곽재구는 남도에서 성장해 삶의 가난을 체험했다. 그런 체험에서 비롯된 그의 시에는 슬픔, 분노, 절망, 그리고 그것들을 넘어서려는 사랑과 그리움 등이 담겨 있다. 아픔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살아가면서 우리는 무언가 결핍된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사평역에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각자에게는 결핍된 것들이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넘어서려는 태도를 지양하고 있다. 삶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다. 시인이 느끼는 우리의 삶은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시는, 슬픔을 넘어서는 사랑하는 삶이다.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지는 시인은, 아름다운 삶을 지양하고 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나희덕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 / 2001년/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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