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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詩산책]시간의 주름

 

- 정우영 시집 ‘살구꽃 그림자’ /2010년/실천문학사

나는 이제 문지방을 넘지 못한다.

문지방을 넘기만 하면 낯선 얼굴이 되어

나도 알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린다.

몇 개의 나를 잃어버린 뒤,

나는 문지방 안쪽에다가 그물을 치기 시작한다.

나는 다만 나를 가둬두고자 할 뿐이나

그물에는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 걸려든다.

오래 묵은 바람과 풀죽은 볕을 따라

곰삭은 지린내도 들어와 파닥거린다.

노랑나비 두 마리도 찾아와 나풀나풀

사랑을 나누다가 아예 그물을 찢어놓는다.

야가 자나?

아야, 비 온다. 장독 뚜껑 닫아라.

시간의 주름에 접혀 있던 엄니 음성 풀려나오자



문지방도 그물도 가뭇없이 사라진다.

나는 말짱하게 일어나 부리나케 달려간다.

없는 발, 없는 손으로 재빨리

지금은 없는 장독 뚜껑 닫는다.

허공에 지은 집이 잔상들로 부산한 저





우리는 자꾸만 달아나려는 시간을 잡으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산다. 시간의 어느 한순간 속에 그물을 치다

 

 

갇혀 울부짖기도 한다. 과거의 잊히지 않는 상(像)이 기억의 표면을 통과해 시인의 가슴에 내려앉을 때, 한 편의 시는 태어난다. 시인을 통해 시로 재생된 시간은 누군가와 접속한다. 그 순간만큼은 굴절된 시간일지라도 온전히 존재할 것이다. 시인이 넘지 못한 ‘문지방’과 ‘문지방’ 안쪽이 시간의 주름 속에 접혀 있다가, 비 온다고 장독 뚜껑 닫으라는 엄니의 음성과 접속하자 지금은 없는 장독 뚜껑을 닫는다. 시인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자유롭게 왕래한다. 빗물과 장의 경계에 있는 장독 뚜껑의 시간과 문지방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그물의 시간을 넘나들며 미래를 살기도 한다. 우리가 매일 허공에다 짓고 부수는 생각의 집들로 부산한 저녁을 만나는 것처럼 시간은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접혀 있어서 꺼내 볼 수 있는 주름처럼 영원한가?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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