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김중식 시집 ‘황금빛 모서리’ /1993년/문학과지성사
제 궤도를 굳건히 지키는 찬란한 태양과 냉철한 뭇별에게서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별똥별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유성이 지는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 운 좋게 맞닥뜨린 그 찰나와도 같은 순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있지요. 그런데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는, 추락하는 것에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는 바라다니요. 인간이란 그토록 모순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모순 때문에 저는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겠습니다. 그 처절한 아름다움, 그 고통스러운 자유로움을 이해하는 자라면, 그런 자가 그 짧은 순간에 떠올리는 소원이라면 분명 선한 바탕에서 우러나온 소원이 아닐까요? 내가 아닌 너를 위한 소원, 돌이킬 수 없는 내가 아니라 자유로운 나를 위한 소원이기를 이 시에 기대어 기대해 봅니다. /이진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