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번 이 밀밭에 온 적이 있다
이 찰진 흙을 밟고 가다
풀숲으로 미끄러진 적 있다
네 팔이 내 허리를 안은 적 있다
종달새의 둥지처럼 아늑한 네 품에서
젖빛 하늘에 취한 적 있다
내가 처녀인 적이 있다
너와 팔베개하고 한잠 자고 나면
깃털처럼 가벼워지던 아침이 있다
멀리 소풍가자고 꽃시절 다 간다고
손잡아 끄는 너를 팔랑팔랑
천 년 전에 따라 나와
나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사랑은 끌림이다. 그냥 빠져드는 것이다. 아늑한 품에서 젖빛 하늘에 취하고, 사랑의 단잠에서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이다. 사랑은 시공을 넘어선다. 언제였지? 아, 손잡아 끄는 사랑을 따라 나와 나도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못했다. /이윤훈 시인
/나금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