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8 (목)

  • 흐림동두천 22.6℃
  • 흐림강릉 29.3℃
  • 서울 23.3℃
  • 흐림대전 27.4℃
  • 흐림대구 28.8℃
  • 흐림울산 27.9℃
  • 흐림광주 27.1℃
  • 흐림부산 25.2℃
  • 흐림고창 28.0℃
  • 흐림제주 31.4℃
  • 흐림강화 23.5℃
  • 흐림보은 26.2℃
  • 흐림금산 27.8℃
  • 흐림강진군 27.4℃
  • 흐림경주시 28.1℃
  • 구름많음거제 26.0℃
기상청 제공

[아침 詩산책]은은한 빛

세월에 잠겨 썩지 않고 삭는 곳에

아름다움과 기품이 담긴다지만

제대로 삭혀만 진다면

그런 후식(後食)은 없어도 좋으리.



산청군 단성면 남사마을 돌담길 담장

언젠가 돌들의 근육이 풀려

골목길과 한 때깔이 되었다.

늘 그렇듯 덜 삭은 생각을 하며 걷는다.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

청동기 시대의 리듬 속을 걷는 것 같다.

생각이 줄어든다.

양편 담장 안에서 태어나

공중에서 엇박자 X가 되어

건너 집 담 속을 들여다보는

두 회화나무 밑을 지날 때는

생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유머러스해진다.

하늘 한 편에 빙긋 웃고 있는 낮달,

슬픔도 기쁨도 어처구니없음도

생각 속에 구겨 넣었던

노기(怒氣) 쪼가리들도

그냥 느낌들이 되어 마음 벽에 녹아내린다.

은은한 빛

마음 벽에 새겨진 각(角)진 무늬들도

은근해지는 빛 속에

아무것도, 희한하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 황동규 ‘은은한 빛’/2011년 여름호/불교문예



 

 

 

가을이다. 풀벌레 소리 들으며 산자락의 오래된 마을을 걷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시인은 “돌들의 근육이 풀려/골목길과 한 때깔”이 된 돌담길 담장을 발견한다. 여기서 때깔이란 시간의 옷일 것이다. 황혼기에 접어든 시인도 근육이 풀린 나이, 하지만 아직도 “덜 삭은 생각을 하며” 걷는다. 이때 “청동기 시대의 리듬 속을 걷는 듯” “생각이 줄어든다” 슬픔 기쁨 노기들이 “그냥 느낌들이 되어 마음 벽에 녹아내린다” 그걸 시인은 “은은한 빛”이라고 표현했다. 시간과 공간과 내가 하나로 녹아드는 상태에선 ‘나’라는 개념도 사라지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알리라, 우주와 합일되는 그 느낌을. 언어조차도 사라진다./박설희 시인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