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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자반을 다 건져 먹은 반찬통을

꺼낸다 반찬통에는 아직

간장이 남아 있다

외로울 때 간장을 먹으면 견딜 만하다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내가 일으키려 할 때

할머니는 간장을 물에 풀어오라고 하였다

나는 들어서 알고 있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

혼자 먹던 것은 간장이었었다는 것을



방에서 남편과 시어머니가

한 그릇의 고봉밥을

나누어 먹고 있을 때

부엌에서 할머니는 외로웠다고 했다



물에 풀어진 간장은 뱃속을

좀 따뜻하게 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운을 주었다

할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달라고 한 음식은

바로 간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었다

수년째 자식들은 찾아오지 않던 그 방

한구석엔 검은 얼룩을 가진

그릇이 놓여 있었다



내가 간장을 가지러 간 사이 할머니는

영혼을 놓아버렸다

물에 떨어진 간장 한 방울이

물속으로 아스라이 번져가듯

집안은 잠시 검은 빛깔로 변했다



비로소 나는 할머니의 영혼이

간장 빛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할머니의 손자이므로 간장이 입에 맞다

혼자 식사를 해야 했으므로

간장만 남은 반찬통을 꺼내놓았다

/하상만

 

 

 

시인의 마음 한구석에는 구겨진 처방전이 있다. 처방 목록에는 ‘간장’이 있고, 병명은 ‘외로움’이다. 검은 빛이 도는 간장은 하상만 시인이 외로울 때 먹으면 견딜 만한 응급 처방약이다. 외로움의 특효약인 간장.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허기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먹었던 ‘물에 풀어진’ 할머니의 간장이 있다. 오랫동안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던 할머니의 방에는 ‘검은 얼룩을 가진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 안에 담겨 있던 간장을 할머니는 영혼을 내려놓는 순간에도 찾았다. 그래서 시인은 할머니의 영혼이 간장 빛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의 상처를 녹여내 나온 눈물은 간장처럼 짠맛이었을 것이므로……./이설야 시인

- 시집 ‘간장’ /2011년/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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