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뭇잎이
해를 향해 오체투지를 한다
이제 몸마저 버릴 거라고
가을 나뭇잎 그늘은
영원한 사원이다
가을 나뭇잎 그늘에서
바라보는 외길
앞서 걷는 가을 나뭇잎
몇 걸음에 몸 낮추고
엎드려 경배한다
뒤돌아보니
길 없고
쨍 가을 햇빛이다
가을, 들녘에 곡식이 익고 거리에 낙엽이 지는 가을이 올해도 또다시 우리에게 걸어왔다. 나해철의 시 ‘가을 나뭇잎’은 가을을 마주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다. 아직 땅에 지지 않은 가을 나뭇잎은 가을이 되면 낙엽이 돼야만 하는 대자연의 이치에 묵묵히 따를 뿐이다.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절인 ‘오체투지’를 하는 것이다. 가을 나뭇잎은 두 무릎을 꿇어 땅에 댄 다음 두 팔을 땅에 대고 머리를 땅에 대어 절을 한다. 이러한 가을 나뭇잎을 보며 시 속 화자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에 경외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생각한다. 대자연 속에서 하나의 생명체인 시적 화자 역시 나뭇잎과 마찬가지로 오체투지를 시도한다. 그러고는 뒤돌아본다. 시적 화자의 시선에는 길은 보이지 않고 쨍쨍 내리쬐는 가을 햇빛이 들어온다. 지나온 길 대신 이젠 가야 할 길을 봐야 하는 계절이 온 것이다. /박병두 시인
- 나해철 시집 <꽃길 삼만리>/2011년/솔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