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8 (목)

  • 흐림동두천 22.6℃
  • 흐림강릉 29.3℃
  • 서울 23.3℃
  • 흐림대전 27.4℃
  • 흐림대구 28.8℃
  • 흐림울산 27.9℃
  • 흐림광주 27.1℃
  • 흐림부산 25.2℃
  • 흐림고창 28.0℃
  • 흐림제주 31.4℃
  • 흐림강화 23.5℃
  • 흐림보은 26.2℃
  • 흐림금산 27.8℃
  • 흐림강진군 27.4℃
  • 흐림경주시 28.1℃
  • 구름많음거제 26.0℃
기상청 제공

밖은 눈보라다



무게라곤 없이 그저 휘몰아치는 저 희고 쬐끄만 가시여우들

아무 데나 붙어서는 금세 물이 되고 바람이 되고 흙이 되는 구미호들



그것들을 배경으로

유리 안에서

동백 한 송이 핀다



어제만 해도 수상한 봉오리였던 것이

한 달 전만 해도 대롱 속 실성실성한 물이었던 것이

일 년 전에는 흙이었던 것이

백 년 전에는 돌멩이였던 것이

흑암(黑暗)이었던 것이

무슨 꽃처럼

한 길 가지 위에 난짝 올라 앉아

인(人).간(間).을 홀린다



갓난아이처럼

빠알갛게

울며

/이경림

- 시집 『상자들』- 2005년 랜덤하우스중앙

 

 

 

우리를 홀리는 것들을 시인은 “여우”라 부른다. “아무 데나 붙어서는 금세 물이 되고 바람이 되고 흙이 되는” 변신의 귀재. 눈보라 치는 겨울 창밖, 무게 없이 휘몰아치는 눈송이는 가시여우, 구미호다. 유리창 안에는 눈보라를 배경으로 “동백 한 송이 핀다”. 물이었던, 흙이었던, 돌멩이였던 것이 “가지 위에 난짝 올라 앉아” “갓난아이처럼 / 빠알갛게” 울며 우리를 홀린다. 그래서 동백 한 송이 앞에서 눈길을 돌리기가 그리 어려운가 보다. 일상에서 눈을 떠 이런 여우들을 발견하는 것이 즐겁다. 돌고 도는 삼라만상이 다 여우가 아닌가.

/박설희 시인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