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일기 /최춘희
새벽에 깨어 눈뜨면 문득 사는 것이 지랄 같다
가슴 밑바닥 치고 올라오는 허기 목울대를 때리고
눈부신 꽃대 밀어 올리던 봄날 흔적 없다
갈 데까지 가보자고 하늘까지 넝쿨 뻗던,
푸른 적의 무성한 여름도 가버렸다 찬란한
단풍의 호시절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다
평생 몸 누일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아비
어서도 곁방살이 떠돈다는 풍문이다 날이 새면
집 지으리라 다짐한다는 히말라야 전설 속
어리석은 새처럼 노숙의 한평생 낙엽으로
발에 차인다 당겨 쓴 카드빚과 마이너스 통장의
막막함이 목줄을 당기고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세금 고지서 꽉 막힌 벽이 되어 막아서는
비상구 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뿔뿔이 흩어진
황금빛 날들 기억도 희미한 채 녹슬어가고
먹구름의 공습 시작 된다 컨테이너 박스가
철거되고 곧 혹독한 유형(流刑)의 겨울이 올 것이다
-2012년 시와 경계 겨울호에서
최춘희 시인은 중년의 여류시인으로 삶을 잘 그려내는 시로 많은 울림을 준다. 공터일기는 절망의 노래가 아니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 오더라도 살아나겠다는 의지가 반어법처럼 이 시에 깔려 있다. 얼음장 쩡쩡 우는 산골에도 봄을 기다려 언 땅에 묻혀 숨을 고르는 꽃이 있다. 언 땅에 뿌리를 박고 봄이면 밀어 올릴 줄기를 준비하는 꽃도 있다. 현실의 절망을 이 시가 읽어가지만 이 모든 것은 박차고 오를 반동의 힘을 가져다 줄 바닥 같은 것이다. 절망하자 절망하자 그러면 곧 절망이 절망이 아니라 희망임을 알게 되리라는 말이 떠오른다. 울자 울자 울다보면 울음이 웃음으로 변하는 날이 올 것이다.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