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 2 /신동집
가지에 주렁 달린 열매를 보아라.
행인(行人)이여
반짝이는 한 알씩의 노래를 보아라.
할 일 마친 나무는 아득히
생각에 잠긴다.
열매들의 달롱이는 노래도 알 바 없이
나무는 대지(大地)의 다스림을 받아들인다.
해 짧은 날의 목숨을
한로(寒露)의 가지 끝에 걸어 놓고
떠나는 행인(行人)이여.
누구나 다 한 번은
마지막이 될 인사를 남겨 놓고
돌아갈 곳은 언제나
서리 묻은 원점(原點)이다.
길 떠나는 이여. 한로의 가지 끝에 짧은 목숨을 걸어놓고 떠나는 이여. 열매를 맺은 후 할 일 마친 나무가 대지의 다스림을 따르듯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無)로의 영원한 회귀, 그것이 삶이다. 그것은 허무가 아니다. 시작된 원점으로 돌아가는 우주적 삶이다. 시원에 이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