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산수(山水) 서춘자
지금까지 전해 준 소식 얼마던가
곰곰이 앉아 생각하는 새
흰 소식 하얗게 울고
검은 소식 까맣게 울어
이제는 한 줌 흑백이 되어버린 새
쌍작보희(雙鵲報喜) 군작보희(群鵲報喜)
버들가지 녹음 속 분주한 적 있었지만
이제는 기쁨도 슬픔도 부질없는 나이
시절 여의어가는 삭정이 찾아 앉아
아침나절 가도록
묵정에 든 새
얼굴 온통 먹물옷 입어
삭정이 도반에게도 성명 감추고
등 돌려 앉아
좌선하는 새
흔히 까치는 우리에게 길조(吉鳥)로 통한다.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에 나타난 까치는 사뭇 다르다.
이 시에서 까치는 흰 소식(기쁜 소식)과 검은 소식(슬픈 소식)을 모두 전하는 새다.이 시의 화자는 ‘기쁨도 슬픔도 부질없는 나이’, 인생의 새옹지마를 알 만큼 나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어떤 소식에 들떠 하기보다는 좌선할 줄 알 만큼 성숙한 존재이다. 이 시는 ‘쌍작보희(雙鵲報喜) 군작보희(群鵲報喜)’, 동일한 어미인 ‘보희’가 반복되어 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생은 돌아볼 때 비로소 보이는 법이다.
사는 동안에는 그 실체를 알 수 없으니, 많은 이들이 인생이 오묘하다고 하는 것이다. 경거망동하지 않고 좌선할 줄 아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날마다 기쁜 소식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박병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