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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서 따로 또 같이 투쟁 ‘형제 의병장’

김원국(金元國 1873. 4. 7~1910. 5. 16) 선생
김원범(金元範 1886. 1. 9~1909. 9. 2) 선생
김원국, 무등산서 의병 규합… 독립적 대일항전도 성과
김원범, 대동창의단 조직 등 활약… 교전 중 체포·자결

 

김원국, 김원범 선생은 전라도 광주 출신의 형제 의병장으로 형 김원국은 1905년 광산군 송정리에서 일본군을 타살한 후 이듬해 3월 무등산에서 300명의 의병을 규합해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고, 동생 김원범은 그 선봉장이 됐다.

1907년 9월에는 호남의병장의 거목인 기삼연 의병부대에 합류했고, 이어 12월 김준과 합진해 일본군 4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뒀다.
 

 

 


아우 김원범 또한 1908년 7월 전해산 의병장과 함께 대동창의단을 조직해 중군장으로서 영광 불갑산, 장성 동화, 담양 한재, 함평 원야 등 여러 지역에서 활약했으며, 1908년 9월 김원국은 의병장 조경환 의진에서 도포장으로 활동하던 동생 김원범을 따라 선봉장이 돼 부하 100여명을 거느리고 전남 나주, 함평, 광주 어등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그러나 호남의병을 초토화시키려는 일본군의 대대적인 탄압작전은 의병부대를 사방에서 압박해 들어와 1909년 1월 일본군의 기습으로 광주 어등산전투에서 조경환 의병장이 전사하고, 아우 김원범은 체포된 후 자결 순국했다.

김원국은 아우의 체포 이후 의병을 수습해 의병대장이 돼 나주향교 유림들에게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킨 뜻을 알렸고, 일본인이 장악한 광주 세무서에 대해서는 ‘호남의소’의 이름으로 세금을 거두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일본인에게 아부하는 친일파, 일진회원, 밀정 등을 처단한다고 경고했다.

이후 독립적인 의병부대를 이끌어 함평군 적량면 등을 거점으로 광주, 나주, 동복, 창평 등 전라남도 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적극적인 대일항전을 전개해 큰 성과를 거뒀으나, 불갑산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치료 중 적의 기습에 체포되고 말았다.

재판과정에서 선생은 아우 김원범이 일본 헌병에 살해된 것에 대한 보복과 국가를 위해 의병대장이 됐음을 당당히 밝히고 1910년 5월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1963년 형 김원국 의병장을 건국훈장 독립장에, 1968년 아우 김원범 의병장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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