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0 (토)

  • 흐림동두천 25.1℃
  • 구름많음강릉 27.5℃
  • 흐림서울 26.7℃
  • 흐림대전 28.1℃
  • 맑음대구 28.5℃
  • 맑음울산 28.2℃
  • 흐림광주 27.8℃
  • 맑음부산 27.2℃
  • 구름많음고창 28.1℃
  • 구름많음제주 30.6℃
  • 흐림강화 26.1℃
  • 구름많음보은 27.7℃
  • 구름많음금산 27.7℃
  • 구름많음강진군 28.0℃
  • 맑음경주시 27.3℃
  • 맑음거제 27.6℃
기상청 제공

귀가 즐거운 ‘깨알 유머’ 낭독劇 편견깼다

 

움직임 적은 공연 선입견 깨고

입체적 캐릭터로 극 역동성 부여

뜬금없는 보조 배우들의 등장

분위기 고조… 감초 역할 ‘톡톡’

다양한 음향에 라이브 보컬까지

제한된 연기 보충 공연 맛 더해

포증의 과장된 몸짓·대사 ‘눈길’

극 후반, 5분 멀다하고 웃음폭탄

도립극단 야외 낭독 공연 ‘백묵의 원’

5분이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웃음, 무대 위의 배우들도 유쾌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며 대본을 살피다가 툭툭 솟아나는 웃음을 참는 배우들의 모습은 새롭고 또 즐거웠다.

무대가 함께 즐기고 있다는 공감이 커질 수록 객석의 웃음 소리도 한 층 볼륨을 높였다.

지난 30일부터 9월 1일까지, 경기도립극단이 도문화의전당 썬큰무대에서 선보인 낭독 공연 ‘백묵의 원’의 풍경이다.

‘백묵의 원’은 13세기 중국고전 ‘회란기’를 야외 낭독공연 스타일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마원외의 첩으로 들어간 장해원과 마원외의 본처 마씨부인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아들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장해원이 포증의 지혜로 누명을 벗고 아들을 되찾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시작 10여분을 앞두고 찾은 무대에는 여섯대의 높이를 달리한 마이크와 무대 뒷편으로 자리한 배우와 연주자들로 채워져 있었다.

무대 오른쪽에 놓인 책상으로 제법 진중한 느낌의 노신사와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여자 배우가 보였다.

불쑥 무성영화의 변사가 떠올라 역할을 지레 짐작해 버렸다.

‘낭독’이라는 명칭에서 오는 선입견이 쉽게 극복되지 못하고 있었던 터지만 고선웅의 도립극단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선입견이 뚜렷해 질수록 다가올 반전을 기다리며 흥미도 강해졌다.

장씨부인이 집안의 내력을 소개하며 등장한 주인공 장해당은 함께 등장한 앵무새 캐릭터와 콤비를 이루며 정극 톤의 목소리로 극 초반을 이끌었다.

앵무새 모자를 눌러쓴 배우는 장해당이 처한 상황을 객석에 전하는 한편, 장해당이 마부인의 음모를 알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장해당의 조력자이자 또 다른 자아로서 극의 숨은 주인공이다.

마부인 역시 등장부터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음모를 꾸미고 만족해하는 내면을 탭댄스와 농후한 춤사위로 연기하며, 움직임이 제한적인 장르의 틀 속에서도 역동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변사로 오인했던 턱시도 차림의 노배우들은 배우와 배우가 주고 받는 움직임을 대신 표현하는가 하면, 소품의 이동과 움직임 등을 담당했다.

하나 둘, 무너지는 선입견에서 오는 가벼운 쾌감이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나이 지긋한 노배우들이 소위 말하는 ‘깨알 유머’를 담당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신선함이 좋았다.

홍일점으로 검은색 양복을 입고 무대 위를 활보하는 여자 배우는 특히 눈길을 끌었다.

복장의 이질감, 극의 감정·전개와는 무관한 시크함 등으로 일관하는 그는 강한 존재감과 ‘없는 사람’으로 고려해야 하는 아이러니는 그 자체가 큰 재미였다.

배우들의 등장과 퇴장 등에 활용된 배경음은 연기자들과 연주가들의 손으로 즉석에서 연주돼 공연의 맛을 더했다.

극 초반이 여성 배우들의 대립 연기가 돋보였다면, 중반 이후에는 장해당의 이송을 맡은 두 관원을 시작으로 남성 배우들의 색깔이 두드러졌다.

두 관원을 연기한 중견배우들은 관록이 묻어나는 표현력으로 우둔한 두 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배우들이 TV드라마 포청천의 주제곡을 합창하며 등장한 포증 역시 위엄있는 표정과 대비되는 과장된 몸짓과 대사로 관객의 웃음을 끌어냈다.

극의 중간중간, 폭설을 표현하기 위해 무대 앞에 쪼그려 앉아 스노우스프레이를 뿌리거나 곤장을 치는 상황에서 어설픈 중국어를 내뱉는 보조 배우들은 여전히 움직일 때마다 폭소를 자아냈다.

높낮이를 달리한 마이크의 활용, 장해원의 아이로 ‘인형’을 사용함으로써 만들어낸 또 하나의 웃음 소재 등 낭독 공연이라는 장르에 녹여낸 다양한 연출 기법과 위트는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들어 냈다.

어린 관객이 함께하는 점에서 산모의 신체를 표현하며 다소 ‘수위’ 있는 몇몇 어휘가 사용된 것이 아쉬움 아닌 아쉬움으로 남지만, 야외 공연으로 펼쳐진 이날 무대는 시원한 웃음으로 성큼 다가온 가을 밤의 반가움을 더했다.

박수로 배우들의 퇴장을 배웅하는 동안, 머릿속은 이만한 무대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리라는 생각으로 갈무리 되고 있었다.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