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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이 시는 곽재구 시인의 등단작이며, 아름다운 서정성이 빛나는 시이다. 이 시의 화자는 역이라는 공간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형상화하고 있다. ‘사평역’이 상징하는 바는 ‘삶의 도정’, 곧 길이다. ‘길’은 인간의 삶을 비유한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 앞에 놓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의 숙명을 의미한다. 이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간이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막차’라는 시어에서 연상되는 바와 같이 인생의 막다른 한계에 이른 사람들이다. 간이역사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면서, 지치고 서글픈 삶의 역정을 간직한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는 시적 화자의 애정과 그리움이 녹아들어 있는 서정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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