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박은율
나는 본다
구근을 찢고
몸의 심연에서
수직으로 피어오른
튤립
그 입술이 머금은
고요
반만 벌어진 새벽 어스름
인생에 대해
더 조그맣게 나는 입술을 오므린다
알뿌리의 기나긴 겨울
반만 말하자
반은
침묵
-출처- 절반의 침묵/ 민음사 2013년
1988년에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인 듯하다. 얼른 계산이 안 되어서 계산기를 두드려봤더니 25년이다. 첫 시집을 묶기까지의 시간에 일면식도 없는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반만 말하자’는 말의 울림이 크다. 군락으로부터 멀어진 그러나 유독 빨간 목이 긴 튤립이 떠오른다. 지난 여름을 떠올려보니 튤립의 절정은 반만 벌어질 때가 분명하다. 반을 넘기고 나면 곧 바닥이다. 튤립을 만날 때마다 나도 입술을 조그맣게 오므리고 ‘반만 말하자’ 속으로 주문을 외울 것 같다.
/박홍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