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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향한 불타는 욕망… 조선말 역사를 다시 쓰다

 

대학로 알과 핵 소극장 ‘운현궁에 노을지다’

인천에 터를 잡고 있는 극단 집현의 창단 35주년 기념작.㈔한국희곡작가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월간 문학 동리문학상, 옥랑희곡상, 한국희곡대상 등을 수상한 김태수 작가와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극단 KOTTI 대표이자 연출가인 이상희가 함께 한 연극은 그 면면만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특히 근래 찾아보기 힘든 역사 기반 연극이라는 점은 충분히 흥미롭다.남양주시와 인천을 거쳐 지난 4일부터 대학로 공연을 시작한 연극 ‘운현궁에 노을지다’는 조선말, 혼란의 시대에서 권력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추구했던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운명적 대결,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왕이 된 고종의 비극을 그린 연극이다.

 

 

극단 ‘집현’ 창단 35주년 기념작


흥선대원군·명성황후 운명적 대결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의 비극 그려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의 역사
대원군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

 

 


극은 조선말, 운현궁의 주인이자 우리나라 근현대에서 가장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인 흥선대원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19세기 후반, 갑작스런 철종의 붕어로 12살의 어린 나이의 고종이 즉위한다. 후사가 없는 철종에 이어 차남인 고종을 왕위에 올릴 계획을 세워 온 흥선대원군은 아들이 즉위하자 섭정을 통해 10년간의 권세를 누린다.

그러나 명성황후 민씨의 충언으로 고종이 왕으로서의 자각을 시작하자 대원군은 양주의 직곡산장으로 유배되고, 격렬한 분노로 섬망증(환각)에 빠져 괴로움에 시달리게 된다.

정치적 야망의 권력자로서, 아버지로서 여러 자아(自我) 들이 충돌하며 점차 쇠약해져 가던 대원군은 주변의 권유로 이름 모를 산사를 찾아나서고, 산행 길에 정체 모를 중년 사내를 만나면서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한다.

자아와의 대화를 통해 정치적 초심을 찾은 그는 곧 다시 궁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그를 기다리는 조선은 여전히 혼란의 소용돌이 속. 명성황후의 죽음 이후 격앙된 고종과의 언쟁에서 대원군은 “조선을 바꾸기 위해 권력이 필요했을 뿐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 진정 아니었다”고 호소하지만, 이미 국운이 다한 조선의 되돌릴 수 없는 현실에 절규하며 극은 막을 내린다.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 중앙의 붉은 천자락과 오른편에 위치한, 주요 대사가 걸린 작은 나무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고종 즉위 후 그의 목에 걸려 대원군의 손 끝에 붙들린 천의 향방은 권력의 이동을 상징한다.

 

주인공인 흥선대원군의 고뇌를 따라가며 배우의 연기에 몰입하고나면, 대원군의 정적이 된 고종과 명성황후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지기도 한다. 아내인 명성황후를 통해 비로소 왕권을 자각하거나 결국 국권을 외세에 빼앗기며 망국의 군주가 된 고종의 모습은 무능함이 강조된다. 또 고종의 권위를 찾는 과정에서 시아버지인 대원군과 권력을 놓고 대립하는 장면이나, 외세를 받아들이지만 결국 일본에 의해 시해 당하는 명성황후의 모습에선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의 국모’의 모습은 축소돼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연극은 이들을 단순히 대원군과 이분화하지 않는다. 외세의 힘을 빌려서라도 세계정세에 대등하려 했던 명성황후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어엿한 일국의 군주가 되고자 했던 고종의 의지 등이 대원군과 대립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드러나며 균형 있는 시각으로 그려진다.

권력을 향한 세 인물의 팽팽한 대립과 대원군의 광기어린 고뇌가 중심을 이루는 극은 전반에 긴장감이 서려있지만, 대원군의 섬망증이 악화되며 등장하는 그의 다른 자아들의 재담과 또 다른 자아인 산 속의 정체불명의 사내의 쾌활한 모습은 분위기를 적절히 이완시켜 2시간이라는 다소 긴 공연임에도 피로감을 느끼지 않게 한다. 무엇보다, 정제된 대사는 공연의 품격과 극의 의미를 완숙하게 잡아낸다.

연극 ‘운현궁에 노을지다’는 스스로를 ‘정치관망극’이라 표현하고 있다. 익숙한 조선말의 역사를 대원군의 시각에서 새롭게 표현해낸 연극은 열린 역사관을 요구하는 현대에 값진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연극이 끝 난 후 배우들이 인사를 마치고 잠시간 무대를 거니는 순간은 절호의 포토타임이니 놓치지 말기 바란다.

대학로 알과 핵 소극장에서 6월 1일까지 평일(화~금)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3시, 7시 30분, 일요일 오후 3시 공연.(문의:0505-894-0202)

/박국원기자 pkw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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