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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삭공구 툴홀더 국산화… 日에 역수출하다

토착화 경영에 가장 성공한 ‘일본인 CEO’
절삭공구 국내1위 강소기업 연매출 200억원
남동공단서 28년 장비 연구 성공신화 일궈

 

㈜한국닛켄 (와카이 슈지 대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편견이 있는가.

절삭공구 전문업체 한국닛켄㈜을 28년간 이끌어 온 와카이 슈지(75·사진) 대표를 만나 본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대기업 하청업체로 전락해 더없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네 중소 공장들.

그 이름없는 공장들이 늘어선 인천시 남동공단 한켠에 빨간색 벽돌과 빨간색 현판을 단 ‘NIKKEN KOREA(닛켄 공작소)’는 확 눈에 띨 수 밖에 없다.

연매출 200여억원, 밀링, 홀더 등 절삭공구 제조분야 국내 1위의 강소기업의 리더, 와카이 수지의 성공신화가 펼쳐진다.

와카이 슈지 대표가 한국과 인연을 맺고 ‘사랑’에 빠지기 시작은 것은 1970년대 말이다.

“한국의 산업화 발아기에 있을 무렵이다. 중소 공장들이 가장 필요했던 것은 제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계장치였다.”

와카이 슈지 대표는 주저하지 않고 평소 친분이 있던 NIKKEN 오사카 본사 회장의 파견직 제안을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일제 공작기계를 그저 수입해다 판매하는 일에만 매진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함께 파견됐던 일본인 동료들은 철수했고 경영의 최정점에 서게 된 그는 한국여성과 결혼, 한국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한국 직원들은 모두 가족 같았고 너무도 성실했다. 직원들이 웃어야 나도 웃을 수 있었다. 나의 시조는 이곳 만석동 공장이었다”

이 시기 그는 본사 수입판매 방식에서 벗어나 자체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 후로 한국 공장과 한국 실정에 맞는 기계장비와 절삭공구 제작을 위해 각고의 노력이 시작됐다.

“일본 본사 회장이 소신대로 경영해 보라며 나를 지지해줬다. 본사야 글로벌 시장을 타켓으로 제품을 대량생산했지만, NIKKEN KOREA는 소량 다품종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제품은 절삭공구의 중간 연결장치인 ‘툴홀더’였다.

산업화 붐과 맞물려 탄탄대로를 달리던 국내 공장에서 유난히 공급이 불안정했던 기계장비 중간 연결 장치들, 그는 여기서 미래시장을 봤고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당시 대우중공업, 삼성중공업, 기아기공, 두일산업 등 쟁쟁한 동종업계 기업들이 지금은 모두 다른 곳으로 넘어가 기계장비제조라는 원사업만을 고수하는 업체는 없다. 그러나 나는 버텼고 오로지 공장 시스템 효율화 제고를 위한 공구생산에 매진했다.”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 툴홀더 가격을 3분의 1까지 낮추며 100% 국산화에 성공한다.

급기야 700억대 규모의 국내 툴훌더 시장의 35%를 점유, 오사카 본사 제조 기술을 앞서며 역수출을 펼쳐낸다.

게다가 2010년에는 절삭 공구를 단 몇초 만에 탈부착 할 수 있는 열박음 장치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이제는 명실공히 NIKKEN JAPAN을 초월하는 세계적 강소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모든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 무게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했다. 문화차이로 인한 오해도 있었지만 ‘직원들이 행복감을 느껴야 회사에 플러스다’라는 철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혈액검사 결과 30대 혈액을 지녔다는 와카이 슈지 대표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천상공회의소 상임의원, 한국공작기계산업협회 이사,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며 ‘토착화 경영에 가장 성공한 일본인 CEO’로 꼽히고 있다.

인천을 제2의 고향이라고 스스럼 없이 말하고 아프리카 봉사 활동에서도 언제나 Made in Korea(한국제품)와 Donated from Korea(한국기증)를 표방하는 그다.

남다른 인천사랑과 인재개발에 힘쓰는 그는 최근 인천기계공고 학생들을 선반기술자로 채용해 대학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사랑하는 아내는 이제 그의 곁을 떠났지만 한국의 이름으로 전세계 절삭공구 분야를 선도하는 그의 도전 정신과 성실함은 28년전과 하등 다름이 없다.

/김종국기자 k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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