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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6·25전쟁 영웅

베델(Ernest Thomas Bethell, 1872.11.3~1909.5.1) 선생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

항일언론 선봉… 침략상 국내외 폭로

 

영국 언론 특파원으로 입국
대한매일신보 창간 항일운동
의병활동·을사조약 무효 보도

일제, 영국정부에 추방·처벌 요구
결국 영국법정서 유죄판결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 선생은 조영수호조약이 체결된 1883년 이후 한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영국인이다.

선생은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파원 자격으로 국내에 입국했다.

당시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로 전국에서 반일 민족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였다.

선생은 양기탁과 함께 국한문판 및 순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발행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의병 활동을 보도하는 등 항일 언론 활동을 벌였다.

일제의 사전 검열로 한국인이 발행하는 신문에는 실을 수 없었던 강력한 반일 논조의 기사를 외국인 신분을 이용해 보도했다.

특히 고종황제의 친서를 영국 트리뷴지와 대한매일신보에 게재해 을사조약의 무효를 알리는 등 일제의 강압적인 침략상을 국내외에 폭로했다.

한편 일제는 한반도 침략에 큰 걸림돌이던 베델을 추방하기 위해 영국정부에 선생의 처벌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결국 선생은 영국 법정에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선생은 일제의 부당한 침략에 맞서 싸우다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에 정부는 1968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는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선생의 뜻을 기려 2014년 8월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8월 한 달 간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을 담은 기획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제공=국가보훈처 수원보훈지청 /정리=이상훈기자 l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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