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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꿈꾸는 북한 이탈여성에 열린 곳… 춤으로 남북 잇다

경기신문 연중기획 사회적 경제기업 탐방-평양통일예술단

 

2007년 6월 방분옥 대표 창단
2014년 6월 사회적 기업 인증

현재까지 1500여회 공연 선보여
올해 찾아가는 공연 13곳 참가
남사당 상설공연 등 바쁜 일정 소화
TV ‘스타킹’ 출연 후 인지도 ‘쑥’

북한 이탈여성으로만 구성
9년동안 최승희 무용 전수받은
조은희 단장의 합류로 춤 풍성

“끼와 열정을 가진 누구나
예술단원 될 자격이 있다”




‘민족’이란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해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을 일컫는다. 우리가 남한과 북한을 ‘한민족’이라고 말하는 근거 역시 역사적 사실과 함께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단 이후 6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점차 벌어진 것도 사실이다.

특히 체제에 기인한 문화적 이질감은 향후 통일을 향한 발걸음 속에서 서둘러 해소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안성시에 있는 평양통일예술단은 “남과 북을 문화를 통해 하나로 잇겠다”는 목표로 지난 2007년 창단했다.



▲ 오롯이 북한 이탈 여성으로만 구성된 예술단

평양통일예술단은 지난 2007년 6월 1일 방분옥 대표에 의해 창단, 2010년에는 경기도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했다.

현재까지 1천500여회의 공연을 선보여 온 평양통일예술단은 그간 취약계층 시설과 교도소 등을 찾아 무료 봉사 공연을 진행해 오면서 2011년 7월 예비사회적 기업으로 지정 받았으며 지난 6월 사회적 기업 인증을 마쳤다.

방분옥 대표가 노래를, 조은희 단장이 춤을 각각 담당하고 있는 평양통일예술단은 10명의 북한 이탈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


▲ 평양통일예술단의 자랑, 최승희 무용

평양통일예술단의 주요 레퍼토리는 조은희 단장을 중심으로 한 최승희 무용이다.

북한의 최고 예술기관으로 알려진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9년동안 최승희 무용을 전수받은 조은희 단장은 이후 북한에서 직접 무용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원류인 최승희는 한국 신무용의 개척자로 평가된다. 광복 이전 국 내·외의 장기공연과 순회공연을 통해 조선의 정취가 담긴 춤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최승희는 분단 이후, 북한 무용계를 선도하며 지속적으로 조선춤을 체계화하고 무용극 창작에 힘쓴 입지적인 인물이다.

최승희 무용은 특히 빠른 템포의 몸동작과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방 대표는 “최승희 무용은 화려한 만큼 빠른 호흡과 체력을 요구해 30대를 넘기면 소화하기 어려운 춤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 꿈을 가진 북한 이탈 여성이라면 누구나

예술단의 성장과 함께 평양통일예술단도 점차 새로운 단원을 선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아주대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도 참여했다.

단원 선정 기준에 대해 방 대표는 “끼와 열정을 가진 북한이탈 여성이라면 누구나 예술단원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2010년 조은희 단장이 입단하면서 단원들에게 최승희 무용의 대표작인 ‘쟁강춤’과 ‘물동이 춤’ 등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어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아도 단원으로 입단 후에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됐다는 것이 방 대표의 설명이다.

“지난 취업박람회에서도 15명의 북한 이탈 여성이 입단 의사를 밝혀왔다”는 방 대표는 “예술인을 꿈꾸는 북한 이탈여성들이 한국에서 그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표 북한 예술단체로 도약

평양통일예술단은 지난 2011년 12월 열린 경기도 송년음악회 초청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조 단장이 예술단을 대표로 초청됐으나 단원과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조 단장의 부탁으로 함께 무대에 서게 됐다”며 방 대표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를 계기로 평양통일예술단은 전국 문화행사 및 축제 등에 초청되면서 무대에 오르는 일이 많아졌다. 또 2013년부터 도의 찾아가는 문화 사업 단체로 선정 돼 14회의 찾아가는 공연을 가졌으며, 올해도 13곳을 찾았다.

한편, 지난 2012년 안성에서 열린 세계민속축전과 안성맞춤랜드 상설공연에 이어 올해 3월부터 남사당 상설공연에 오르는 등 예술단의 가치를 인정한 안성시의 배려로 정기적으로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또 지난 10월에는 TV프로그램인 ‘스타킹’에 출연하며 예술단의 입지가 크게 높아지기도 했다.

방 대표는 “국민들 관심 속에서 발전하고 있는 예술단은 앞으로 북한의 무용과 노래로 남북이 만나는 날까지 열정을 다해 갈 것”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평양통일예술단만의 공연장 무대에 남북 공연자들 함께 오르는 날 왔으면”

 


방 분 옥 대표

북한에서 못 이룬 꿈 이뤄

상처 많은 딸같은 단원들

돈독한 우애 고마운 마음



“상처 많은 북한 이탈 여성들을 엄마처럼 안아주고 삶의 일부를 책임져 주는 것이 대표인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방분옥(59) 평양통일예술단 대표는 단원들에 대한 마음을 이같이 표현했다.

방 대표는 “꿈이 있다면 우리 예술단만의 공연장을 갖는 것”이라며 “그 무대에서 남한과 북한의 공연자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변치 않는 열정으로 단원들과 함께 문화를 통한 남과 북의 하나됨을 향해 가고 있는 방분옥 대표와 만났다.



- 예술인의 삶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어려서 부터 노래에 관심이 많았고, 최고의 예술가를 꿈꿨지만 북한은 출신성분과 외모를 따져 예술인을 선발하기에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지방의 예술선전대에 들어가 꿈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도 했지만 조금만 실수해도 쫓겨날지 몰라 눈치를 보는 생활을 해야했다.

그러다 지난 2004년 1월 대한민국으로 왔고 지금의 평양통일예술단을 만들어 북에서 못 이룬 꿈을 이뤄나가고 있다.



- 평양통일예술단을 창단한지 7년이 됐다. 그간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창단 당시에는 남과 북의 이질감이 아직 심했던 때라 우리 예술단을 초청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교통비 1만원에도 공연에 나설 만큼 경제적으로도 어렵다 보니 생계가 힘든 단원들 중에 만원이라도 더 주는 일자리가 있으면 예술단을 떠난 일이 생겨 속으로 말 못할 눈물도 많이 삼켰다.

하지만 나와같이 북한 체제와 탈북 과정에서의 상처를 품고 있는 딸같은 사람들이었다. 엄마처럼 가슴에 품고 예술단의 의미를 이해하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겨냈다. 공연을 앞두고 다 같이 밥을 먹으며 우애를 다질 수 있을 만큼 안정된 지금의 모습에 너무 고마운 마음이다.



- 최근 TV출연 등 예술단이 많이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평양통일단만의 극장을 가지는 것이 최대의 꿈. 현실이 될 진 모르는 일이겠지만 꿈은 크게 갖고 있다.

극장을 기반으로 북한 예술단체 연합회도 만들어 함께 공연하는 날이 왔으면 한다. 또 남한의 공연자들과도 함께 하는 공연을 많이 만들고 싶다.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 80세가 넘더라도 꾸준히 단원들과 평양통일예술단의 꿈을 이뤄가고 싶다.

/박국원기자 pkw09@

/사진=오승현기자 o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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