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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진화] 자기 상품화의 역설

 

산업혁명 이전 노동이 생존 그 자체였다면, 산업사회에서 노동은 임금과 교환되는 시간으로 정형화됐다. 그리고 미래 AI 시대를 맞이한 지금, 노동은 더 이상 시간도 직무도 아니다. 오늘날 노동은 차별화된 존재 증명에 가깝다.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오래 했는가보다, 얼마나 특별한가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변화는 노동의 형태뿐 아니라 인간이 사회에서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노동자로서 자신을 대상화하지 말라”던 진보적 주장은 점차 현실과 어긋난 외침이 되어간다. 자본주의적 상품화에 맞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던 이 언어는, 정작 노동 자체가 대상화되지 않으면 존재가 증명되지 않는 AI 시대의 역설 앞에서 힘을 잃었다.

 

미래 AI 시대의 플랫폼 경제에서 노동자는 집단이 아니라 개별 계정으로 환원된다. 우버 기사나 배달 앱 라이더는 계약서보다 프로필과 평점, 알고리즘 점수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나는 노동자다”라고 외치기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자기소개서 대신 포트폴리오를, 근속연수 대신 클릭 수와 리뷰를 내밀어야 하는 세상에서 설명되지 않는 노동은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된다. 자기상품화는 위험하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생존 전략이다.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사회적 퇴장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을 알아주지 않는 플랫폼 세상에서, 자기 설명과 자기 홍보 없이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 노동운동 역시 이 변화와 충돌한다. 동일 산업 종사자들의 집단적 연대는 해체되고, 개인의 성과는 알고리즘에 의해 실시간으로 분절·평가된다. 일부 플랫폼 노동자들의 투쟁이 임금 인상보다 “삶을 통제하지 말라”는 요구로 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노동의 정치가 계급 중심의 분배 갈등에서 ‘존재 불안’의 정치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사회가 제공하는 정체성이 소비자와 데이터 생산자로 축소될수록, 이들의 요구는 경제적 보상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위치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된다.

 

해법은 ‘기여 중심 사회’로의 전환에 있다. 노동 중심 사회가 ‘일하고 있음’ 자체를 가치로 삼았다면, 기여 중심 사회는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자기상품화는 자아를 시장에 종속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기여를 사회에 전달하는 수단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사회가 고용 여부가 아닌 기여를 기록하고, 축적하며, 보상할 수 있을 때 개인은 끝없는 자기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때 자기상품화는 소모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존 전략이 된다.

 

자기상품화의 역설은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낡은 언어와 오래된 노동 개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알리는 경고다. 노동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기여’라는 새로운 기준이다. 미래 AI 시대의 노동은 ‘무엇을 팔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파편화된 노동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기여의 주체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자기상품화의 역설을 넘어서는 진정한 노동 혁명이며, 다음 질서를 설계할 수 있는 유일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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