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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두고 온 가족들 생사라도 확인했으면…”

 

실향민들의 가슴 절절한 사연들

구리 수택동 거주 김철민씨
“북 있는 아이들 아직도 못잊어
족보에 올리고 만날날 손꼽아”

황해도 고향인 이용찬씨
“가족들 생사도 알수 없어
가슴에 맺힌 한 안고 살아가”

황해도 연백 고향인 이범주씨
“가족 남겨두고 왔다는 마음에
지금까지도 가슴이 먹먹해”




통일의 꿈
역사의 상흔, 남북 이산가족 ②


실향민, 한국전쟁으로 북녘 고향을 떠난 후

더 이상 자유롭게 돌아갈 길이 막힌 사람들.

이들은 가족을 두고 자유의 나라를 선택했다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에 눈시울을 적시기가 일쑤다.

이때문에 북녘에 남겨둔 가족은 지울 수도 치유될

수도 없는 기억과 상처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지만 헤어진 가족과의 만남을 마냥 포기할 수도

없어 해가 바뀔 때마다 상봉의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꿈꾼다. 꿈 속에서의 만남조차 가슴 벅찰 만큼 북녘

가족에 대한 이들의 그리움은 간절하고도 애틋하다.

 



■ “북녘 가족과 만날 날만 학수고대”

구리시 수택동에 사는 김철민(95) 옹은 1951년 32세의 나이에 인민군으로 강제동원돼 한국전쟁에 참가했다.

참전 당시에는 남겨진 부인과 2남 2녀의 자녀를 두번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서구 열강들의 군사·외교적 긴장과 이권다툼 속에 남북분단이 현실화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전쟁포로가 되면서 획일적인 사회주의체제에의 순응과 자유국가로의 귀환을 놓고 선택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그는 거제도 수용소 수감 후 1953년 반공포로 석방 당시 북에 있는 가족을 남겨둔 채 결국 자유를 택했다.

김 할아버지는 “북한에 있는 아이들을 잊지못해 동래 김씨 족보에 싣고 지금껏 만날 날만 손꼽아 그리며 살아왔다”면서도 “4남매를 키워준 북측 부인에게는 너무 죄스럽고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우선 내 몸이 건강해야 북녘 가족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 하루 힘들지만 희망을 갖고 견뎌오고 있다”고 했다.

황해도가 고향인 이용찬(65) 씨는 북녘에 두고 온 형제자매의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었다.

이씨는 “북한 어디엔가 계시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도 몰라 가슴에 맺힌 한을 안고 살아간다”며 “형제들 모두가 어떤 고생이 있더라도 통일이 될때까지 제발 살아 있기만을 기도한다”고 말했다.

생전에 부모가 살던 고향을 그리며 통일을 꿈꾸는 한인2세도 있다.

실향민 2세 최규남(51) 씨는 “통일이 되면 북녘고향을 찾아 부모님께서 들려주신 고향의 향수를 느끼고, 그곳에서 당신들이 일구신 자산도 함께 찾고 싶다”고 말했다.

 



■ 매년 새해벽두 북녘가족 안녕기원

실향민들은 매년 설날, 추석 등 명절 때마다 임진각에서 합동차례를 지내며 잠시나마 망향의 한을 달랜다.

이들은 임진각 망배단에서 망향경모제를 통해 북녘 가족들의 안녕과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기원한다.

고향 땅이 지척인데도 수십년째 생사조차 모르고 지내온 통한의 세월을 스스로 달래며 눈시울을 적시는 일이 다반사다.

현재 정치권 등에서 옥신각신하는 통일 또는 외교 명분은 이들 실향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지 이미 오래다.

북한땅에 개성공단이 들어서고 철도와 다리가 놓이는 일보다 헤어진 부모, 형제자매와의 재회가 더 절실하다.

생전에 북녘 가족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보는 것이 눈물과 그리움으로 지낸 수십년의 세월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지난해 2월 제19차 남북이산가족 상봉에서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반가움으로 연신 눈물만 쏟아내기 일쑤였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3년 3개월만에 재개된 만큼 더욱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평안도가 고향인 이선향(88) 할머니는 북측의 남동생 윤근(71) 씨를 만나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 할머니는 1·4후퇴 때 가족들과 고향을 등지고 피난길에 올랐지만 도중에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이범주(86) 할아버지도 남동생 윤주(67)씨와 여동생 화자(72) 씨를 만나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이 할아버지는 당시 “1·4후퇴 때 할아버지께서 내가 장남이니까 먼저 연백에서 가까운 강화도로 가라고 했다”며 “이후 가족을 남겨두고 왔다는 마음에 지금까지도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의 묘소와 기일 등을 물으며 그동안 부모님 곁을 지킨 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들이 두 손에 선물 보따리를 가득 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고향땅을 찾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윤현민기자 hm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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