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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하나로 만든 토종 슈퍼 파워… ‘위풍당당’ 스포츠 강국

그때와 지금
대한체육회 역사성

 

광복후 1948년 런던올림픽 출전
역도·복싱서 각각 동메달 따내

1976년 양정모가 첫 올림픽 금
1988년 서울올림픽 완벽 개최
1994년 동계올림픽도 종합 6위

손기정 등 5인 ‘스포츠영웅’ 선정


대한민국 근대 스포츠의 역사는 1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4년 갑오경장을 계기로 근대 스포츠가 도입된 우리나라는 1906년 3월 11일 첫 민간 체육단체인 대한체육구락부가 설립됐고 같은 해 4월 11일에는 서울YMCA 운동부가 창립됐다.

우리나라의 첫 통합체육조직이라 할 수 있는 ‘조선체육회’는 10여년 후인 1920년 7월 ‘건민(健民)’과 ‘저항’을 이념으로 민족주의 체육단체의 성격을 품고 설립됐다.

도쿄 유학생이던 이중국과 이원용, 변봉현 등을 주축으로 1920년 7월 13일 인사동 중앙예배당에서 창립총회를 연 조선체육회는 다음날 종로의 대실업가 장두현을 조선체육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해 조선체육회가 개최한 전조선야구대회는 현재의 종합스포츠대회인 전국체육대회의 시초가 됐다.

1938년 5월, 일본의 국가총동원령에 따라 일본인이 설립한 조선체육협회에 강제 흡수돼 사실상 해산된 조선체육회는 해방 이후인 1945년 11월 26일 재건됐다.

제11대 회장으로 여운형이 선임된 조선체육회는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리고자 1948년 열리는 제14회 런던올림픽 출전을 추진, 1947년 6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IOC 총회에 참석해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IOC 회원국 정식 승인을 받는다.

그리고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역도의 김성집과 복싱의 한수안이 각각 동메달을 획득해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즈음인 1948년 9월 3일 조선체육회는 대한체육회로 개칭했다.

1960년대 군사정변으로 잠시 혼란을 겪은 대한체육회는 1964년 1월 20일 제22대 민관식 회장의 취임과 함께 부흥기에 들어섰다.

민 회장은 취임 후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해 1966년 6월 15일 무교동에 대한체육회관을 개관한 데 이어 1966년 6월 30일에는 태릉선수촌을 개촌했다.

또 1965년 시작된 6개년 장기훈련 계획을 시작으로 1971년부터는 경기력 향상 5개년 계획(1971년~1976년)을 추진해 세계 수준의 선수를 발굴·육성했다.

이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레슬링 자유형의 양정모가 한국의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성과로 이어졌다.

 


국제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한국 체육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안방에서 개최했다.

한국은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 복싱의 12개 전 체급 석권에 힘입어 일본을 따돌리고 이 대회 첫 종합 순위 2위(금 93·은 55·동 76)를 달성한 데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종합 순위 4위(금 12·은 10·동 11)에 올랐다.

당시 서울올림픽은 빈틈없는 대회진행과 자원봉사자들의 열성 등으로 역대 최고의 대회로 평가받았다.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 스포츠는 세계화와 선진화의 길로 들어섰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나선 한국은 손기정이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한 지 56년 만에 황영조가 마라톤 금메달을 되찾는 등 종합 7위를 차지해 저력을 확인했다.

뒤이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는 동계 스포츠 강국인 캐나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일본 등을 제치고 종합 순위 6위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은 올림픽에서의 계속된 선전과 함께 1995년에는 2002년 아시아 경기대회를 부산에 유치하고 대한유도회 박용성 회장이 국제유도연맹 회장에 당선돼 태권도에 이어 첫 국제기구 수장이 됐다.

1996년에는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를 유치했으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선임되는 등 스포츠 외교에서도 성과를 이어갔다.

또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스포츠계의 유엔총회로 불리는 IOC 총회를 1999년 6월 서울에서 개최했고 이에 앞서 1996년에는 IOC가 후원하는 세계생활체육총회를 열어 스포츠 외교에서도 세계의 중심 국가로 자리했다.

숨가쁘게 달려온 대한체육회는 스포츠역사발굴사업단을 통해 현재까지 대한민국 체육사에 한 획을 그은 ‘스포츠 영웅’ 5명을 선정했다.

고(故) 손기정(육상), 고 민관식(체육행정) 선생과 장창선(73·레슬링), 서윤복(92·육상), 김성집(96·역도)이 그들이다.

손기정(1912.08.29~2002.11.15)은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일제 강점기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 일본인으로 등록돼 출전했지만 가슴에 태극기를 품고 뛴 일화로 유명하다.

민관식(1918.05.03~2006.01.16)은 제22대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한 그는 한국 스포츠의 본산인 태릉선수촌과 무교동 체육회관 건립, 체육발전 중·장기계획 추진과 학교체육 활성화에 앞장서는 등 한국 스포츠의 선진화에 기여한 ‘한국 현대 체육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서윤복(1923.01.09~)은 해방 후 국제대회에서 태극기를 달고 우승한 최초의 인물로 1947년 제51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세계신기록과 함께 대회 첫 동양인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김성집(1919.01.13 ~)은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해방 후에는 처음으로 대한민국(‘KOREA’)라는 국호로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 역도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전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렸다.

정창선(1943.02.27~)은 1966년 미국 톨레도 세계 레슬링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경제개발이 본격화 된 1960년대 당시 그의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은 당시 국민들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희망을 전했다.

우리나라 스포츠는 일제 치하에서는 독립을 향한 항일 투쟁의 성격을 지녔다. 또 해방 이후에는 남북 분단의 비극 속에서는 체제 우위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한국 스포츠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흔들리기도 했으나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을 겪은 후 50여년의 기간 동안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했고, 어려운 시기마다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화합’의 역할에는 변함이 없었다.

/박국원기자 pkw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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