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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얼룩진 과거딛고 혁명 광장으로 거듭나다

 

테마여행가가 들려주는 프랑스

⑤ 꽁꼬흐드 광장(Concorde)

서쪽으로는 샹젤리제 거리의 시작점이며, 동쪽으로는 뛸르리 정원의 끝에 위치한 꽁꼬흐드 광장은 지리적 여건과 정치적 목적에 따라 격동기의 다양한 사건과 행사가 진행된 곳이다.

지리적 위치를 고려해 보면 북쪽으로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연결하고, 남쪽으로는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하원의회 건물과 마들렌느 대성당을 연결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뛸르리 정원과 루브르 박물관, 서쪽으로는 샹젤리제와 라데팡스 신도시가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도시계획적인 면에서는 꽁꼬흐드 광장 건설은 파리시내에서 로코코 양식이 끝나가고 새로운 ‘절충주의’가 시작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광장의 이름은 여러 번 바뀌는데, 최초에는 ‘루이 15세 광장’으로 불리다가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정부가 1792년 8월 10일부터 ‘혁명광장’으로 이름을 변경했으며, 나폴레옹 1세 때는 본래의 ‘루이 15세 광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왕정복고시기에는 ‘루이 16세 광장’으로 불려지다가 7월 혁명이 일어난 1830년에는 ’헌장 광장’으로 불렸다가 7월 왕정이 들어서면서 드디어 ’꽁꼬흐드(화협·화해) 광장’으로 바뀌었다.

또 광장을 장식하는 조각품들과 광장 중앙에도 처음에는 루이 15세 기마동상이 세워졌다가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졌으며, 다시 루이 16세의 동상이 세워졌다가 현재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졌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대리석 업자들이 사용하던 포구로 연결되는 단순한 넓은 공터였는데, 루이 15세가 동부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 메츠(Metz)에서 얻은 병이 회복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 광장에 루이 15세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

1748년에 17명의 건축가들이 참여한 설계공모전을 여는데, ‘가브리엘(Gabriel)’의 설계 안이 당선됐고, 조각가 삐갈에 의해 완성된 루이 15세의 기마동상이 광장 가운데 세워진다.

불꽃놀이 파편 화재 133명 목숨 잃어
중요 장소 부상…다양한 행사 등 치뤄

1792년 단두대 설치… 1119명 처형
슈미트 제안 칼날 마름모꼴 변형 완성
절도범 펠르띠에 첫번째로 목이 잘려

혁명정부 말기 정치색 관련 조각 바꿔
정치 연관없는 오벨리스크 세우기도
 

 

 


◇꽁꼬흐드 광장의 역사

아직 광장이 미완성이던 1770년 5월 30일, 이 광장에서 장차 루이 16세가 되는 왕세자와 마리 앙뚜와네트의 결혼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는데, 쏘아 올린 불꽃놀이의 파편에 의해 화재가 발생하면서 놀란 대중들이 서로 먼저 빠져 나가려는 아비규환 속에 133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이 광장이 중요한 장소로 떠오르며 다양한 행사와 모임이 치러진다. 10월 6일에는 흥분한 시민들에 의해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와네트의 가족들이 이 광장을 통과해 루브르 궁전으로 압송된다.

1792년 8월 11일, 이 광장의 주인이던 루이 15세의 동상이 철거돼 제철소의 용광로로 들어갔으며, 그 자리에는 르모 조각가의 ‘자유의 여신’ 작품이 세워지면서 광장 이름이 ‘혁명 광장’으로 변경된다.

 



◇단두대

본래 까루젤 광장에 설치됐던 단두대가 이 광장에 처음 설치된 시기는 1792년 10월로, 프랑스 왕정의 문서 및 보석을 보관하던 ‘Garde Meuble’에서 왕관의 푸른 다이아몬드를 훔친 도둑들을 처형하기 위해서였다.

감금상태의 루브르 궁전에서 탈출해 처갓집인 오스트리아로 도망가다가 농부의 기지로 붙잡혀 파리로 압송된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21일에 처형된다. 하필이면 선대왕인 루이 15세 기마동상이 놓였던 좌대 밑에 단두대를 설치했다고 한다.

1793년부터 1년 동안 파리에서 처형된 총 2천498명의 사형수 중에 1천119명이 이 광장에서 처형됐다. 루이 16세를 비롯해 마리 앙뚜와네트, 로랑 부인, 보르도의 산악당원, 사촌이던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냈던 필립 오를레앙, 혁명지도자 당통, 로베스삐에르 등.

단두대의 기원은 본래 이탈리아에 존재하던 것으로 두 개의 나무 기둥 사이를 초승달 모양의 날카로운 칼날이 떨어지며 사람의 목을 자르는 장치에서 본떠온 것이다.

당시의 대중들이 ‘국가의 면도칼(Rasoir national)’ 또는 ‘과부(Veuve)’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이 기계를 공식적으로 ‘루이제트(Louisette)’ 또는 ‘루이종(Louison)’으로 불렀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정부의 헌법 의회에서 총무를 맡은 기요땡 박사의 자질에 늘 못마땅해 하던 한 신문 기자가 비꼬는 투로 이 기계에 ‘기요띤느’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

기요땡 박사는 사형수라도 고통 없는 죽음을 갖을 권리를 주장하며 1789년 11월 28일, ‘정형외과 아카데미’의 사무총장이던 외과 의사 앙뚜완 루이가 고안한 기계를 사형수들의 목을 자르는데 이용하자며 헌법 의회에 선보인다.

1791년 6월 3일, 헌법 의회는 “모든 사형수들은 머리를 자를 것이다”라는 법령을 포고하고, 기요땡 박사와 앙뚜완 루이에게 이 기계를 빠른 시일 내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독일 기술자 또비아스 슈미트의 제안을 수용해 초승달 모양의 칼날을 마름모꼴로 바꾸면서 악명 높은 단두대의 모습이 완성됐다.

개선된 단두대는 양과 시체들을 이용해 임상 실험을 거쳤고, 당시 최대의 절도범이던 펠르띠에가 1792년 4월 25일 첫 번째로 목이 잘리게 됐다.

1793년부터 1794년 사이에 대 숙청 작업이 진행되면서 약 20만명의 목을 자르는데 사용된 단두대는 전체 높이 4.5m, 칼날 높이 2.25m, 무게 580㎏의 모습이다.

전국의 각 도청마다 단두대를 하나씩 설치했고, 파리에는 죄인이 많았었는지 여러 곳에 설치했다고 한다.

 



◇광장의 조각

혁명정부 말기에 광란의 공포정치로 수 많은 사람들과 왕족들을 처형한 정치적 색깔 때문에 이 광장의 조각들도 여러 번 바뀐다.

‘루이 15세’의 동상에서 자유의 여신으로 바뀌었으며, 나폴레옹 시절에는 자유의 여신을 철거하고 프랑코 왕국을 세운 ‘샤흘르마뉴 대제’의 동상이 들어선다.

왕정복고를 한 ‘루이 18세’는 자신의 형인 루이 16세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순교당과 작은 성소를 포함한 동상 건립을 계획하고, 동생인 ‘샤흘르 10세’ 시절인 1826년 공사를 시작하지만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1831년 이집트의 부왕 알리가 룩소르 신전(Temple de Louxor) 앞에 있던 오벨리스크를 프랑스에 선물하는데, 1833년 12월 21일 파리에 도착한다.

당시 왕이던 루이 필립이 바로 이 꽁꼬흐드 광장에 세우기로 결정하는데,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던 이 광장에 어떠한 정치적 사건도 연상시키지 않는 오벨리스크를 20만 명의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836년 10월 25일 세운다.

1836년부터 1846년까지 10년 동안 이 광장을 새롭게 단장하는데, 본래 건축가 가브리엘의 의도를 존중하면서 두 개의 분수를 추가한다.

북쪽의 분수는 포도와 밀을 수확하는 모습과 ‘핸’ 강과 ‘론’ 강을 상징하는 조각이 보인다. 프랑스 8대 도시의 여신상들이 프랑스의 발전을 위해 회의를 하는 모습으로 광장 주변에 놓여진다.

연중 행사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대혁명 기념일에는 군사 퍼레이드의 마지막 종착역으로, 오벨리스크 밑에 대통령을 포함한 내각과 연례적으로 한 명씩 초청하는 국빈이 조립식 사열대에서 프랑스군의 사열을 받는 곳이다.

꽁꼬흐드 광장에서 뛸르리 정원에 들어가 산책을 하며 루브르 박물관 쪽으로 걸어가보는 코스도 운치가 있고, 샹젤리제 거리를 통해 개선문까지 산책을 하는 것도 이상적이다.

 

>>테마여행가 안완기는…

한국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의 건축을 공부했으며, 특히 프랑스의 풍부한 문화와 역사에 빠져 들게 됐다.

그는 이 나라의 문화에 대해 감상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는 수 많은 여행객들을 보면서 프랑스를 제대로 느끼고 배우는 정직하고도 건강한 여행문화를 꿈꿨다.

지난 2003년부터 프랑스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홈페이지(www.algogaza.com)를 제작, 운영해 유용한 프랑스 여행관련 정보 및 자료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약력>

- 1986년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 1992년 프랑스 유학

- 1995년 Strasbourg 건축학교 수학

- 1998년 Val-de-Marne Paris 건축학교 수학

- 2002년 프랑스 테마여행 전문 가이드

- 2006년 ‘알고가자 프랑스’ 테마여행사 운영

- 2014년 ㈜OECD 대표부 대외협력부 근무

- 2014년 9월~ ‘알고가자’ VIP여행사 창업

/정리=김장선기자 kjs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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