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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소통의 거리, 광화문 광장

 

광복70주년을 맞아 광화문광장에서는 대대적인 기념행사로 성황을 이루었다. 이곳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참여해 행사의 무게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행사의 중심에 있는 광화문광장이 서울 한복판에 위치해 있는데다 명칭마저 광화문광장이라 이 곳이 경기도와의 인연이 있다는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한다.

경기도청은 일제강점기 지금의 서울이었던 한성부가 경기도 소속인 경성부로 다시 편성됨에 따라 서울로 이전되었다. 해방 후엔 경성부가 서울특별시로 승격되어 경기도와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경기도청은 광화문광장에 자리하게 된다. 그 뒤 경기도청은 대통령령에 의해 1967년 수원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경기도청은 긴 시간 서울과 경기도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아 광화문광장에 자리하였다. 그 중요성을 표시하기라도 한 것일까? 경기도청은 광화문광장에서도 궁궐 정문 앞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경기도청이 위치하고 있었던 광화문광장은 조선시대 육조거리가 있었던 곳이다. 이 육조거리는 왕과 백성이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이 곳을 통해 왕의 명령이 나가고 백성들의 여론이 들어가는 장소였다. 이 육조거리에는 지금의 서울시청에 해당하는 한성부를 비롯해 의정부, 이조, 병조, 예조 등 중추적인 국가기관이 자리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광화문광장에는 정부종합청사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관청들이 자리하고 있던 이 육조거리는 궁궐 밖에 위치해 있다하여 궐외각사라 한다.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했던 신하들이 이 곳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고 분주히 업무를 처리했을 장소이다. 즉, 이곳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행정의 통로이자 소통의 거리였다.

광화문 광장은 백성들이 사는 세상의 끝자락에 위치해있다. 이 끝자락의 경계면에는 궁궐의 시작점인 광화문이 자리하고 있다. 즉 광화문을 기점으로 백성들이 사는 세상과 궁궐의 영역이 나뉘는 것이다. 그래서 광화문 홍예에는 궁궐을 수호하는 수호신인 주작이 그려져 있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온갖 사악한 무리들은 광화문을 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 주작이 있는 대로라는 의미로 육조거리를 주작대로라 부르기도 한다. 궁궐 밖으로 행차하는 임금은 궁궐의 수호신의 영역을 벗어나 광화문을 열고 자신의 얼굴을 백성들 앞에 처음으로 드러낸다. 마치 ‘왕의 덕이 온 나라를 비추듯’이 그렇게 백성들 앞에 등장하는 것이다.

‘왕의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광화문은 세종대왕 시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에는 오문(午門), 정문(正門)으로 불리다가 개칭된 것이다. 광화문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도 우리들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 덕분일까? 지금 광화문광장에는 수년 전과 달리 이순신 동상 뒤로 세종대왕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긴 세월 외로이 서 있다가 세종대왕 동상이 함께 동고동락을 시작한 것이다. 각각 자리한 동상의 위치도 마치 어좌에 앉은 세종대왕과 우리나라를 이순신장군이 굳건히 지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지금 광화문광장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었다. 세종대왕이 광화문 광장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이곳이 생존을 향한 전쟁터가 아닌, 모두가 평화롭게 웃을 수 있는 태평성대로 나아가는 곳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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