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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빛과 색의 향연’ 감탄이 절로

13세기 ‘루이 9세 생 루이’ 명으로 ‘씨떼 궁전’ 안에 건설한 성당
아래층은 일반인 예배장소, 위층엔 예수 가시면류관 등 성물 보관
높이 15m 스테인드글라스에 장식된 1,134장의 종교화 ‘눈 호강’

 

테마여행가가 들려주는 프랑스
생트 샤펠 (Sainte Chapelle)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씨떼 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가까운 곳에 마주보며 우뚝 솟아있는 ‘생트 샤펠’(성스러운 교회)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위대한 걸작으로 꼽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이 곳을 놓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왕궁을 루브르 궁전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10~14세기 동안 왕궁으로 사용했던 ‘씨떼 궁전(Palais de la Cite)’은 현재 ‘대법원’과 ‘꽁씨에즈리 (Conciergerie)’(감옥), ‘생트 샤펠’로 구성돼 있다.

씨떼 섬은 기원전 1세기 경, 골 족의 한 분파인 ‘파리시(Parisii)’ 부족이 정착해 ‘뤼테스’라는 이름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로마정복기에는 로마군이 병영을 설치했으며, 5세기부터 원주민들을 상징하는 ‘파리’로 불린다.

프랑크 부족이 세운 메로뱅 왕조의 ‘끌로비스(Clovis)’ 왕이 최초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6세기부터 씨떼 섬에 거주하면서 왕궁으로 씨떼 궁전을 건설했고, 10세기 말엽 ‘까페 왕조’를 세우는 ‘위그 까페’가 궁전 이외에 행정 부속건물들을 세우면서 실질적인 권력의 중심부 역할을 한다.

1248년 ‘루이 9세 생 루이’(재위 1226~1270)가 왕궁 내부에 생트 샤펠을 건설하기로 결정했을 당시, 바로 지척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의 공사가 이미 많이 진척이 돼 거의 현재와 비슷한 외관을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수의 땀, 성혈, 아마포, 예수를 찔렀던 창, 십자가, 박은 대못뿐 아니라 성자들의 유물, 성모 마리아의 머리카락, 성모의 젖, 성모의 옷 등 약 70점의 성물을 수집한 생 루이 왕은 이에 걸맞은 성당을 건설하기로 한다.

 


그는 예수의 고행과 행적을 본받아 스스로 회개하며 맨발로 다니고, 성 목요일에는 문둥병 환자들의 발을 씻겨줬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왕의 행동들과 보유한 성물은 파리를 가톨릭 세계인 유럽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신권으로부터 보호받는 왕권의 정당성과 신성함을 가질 수 있었다.

1358년 영국과의 백년전쟁 당시 ‘쁘와띠에(Poitier)’ 전투에서 영국군에게 생포돼 런던으로 잡혀간 ‘선량왕 장 2세(Jean II Le Bon)’의 보좌관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의 왕세자 ‘샤를르 5세(Charles V)’가 왕위에 오르자, 좀 더 안전한 ‘루브르 궁전’과 ‘뱅센느 성’으로 거처를 옮겨가면서 왕궁으로서의 역할은 없어지고, 시간이 흘러 왕을 보좌하는 조직들도 옮겨가고 법원과 감옥만이 현재까지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 때 대부분의 성물들이 ‘생 드니(Saint Denis)’ 성당으로 자리를 옮겨가자, 생트 샤펠의 존재 이유가 없어져 1797년부터 법원의 자료를 보관하는 창고로 이용됐다.

1836년부터는 ‘빅토르 위고’의 활동으로 역사적인 유물을 복원하자는 의견이 모아지고, 1837년부터 26년간 정밀한 작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다.

고딕 시대에는 최대한 하늘에 가까이 오르고 싶은 열망을 뾰족탑으로 표현했다는데, 이 성당의 첨탑은 루이 9세 당시 지어진 오리지널은 아니고, ‘나폴레옹 3세’ 시대 1853년에 재건된 것이기는 하지만, 높이 75m에 달하는 첨탑이 인상적이다.

 



◇성물의 역사

성물은 4세기부터 12세기까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동로마 황실에서 보물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베네치아 상인들의 농간으로 제4차 십자군 원정대가 콘스탄티노플을 1204년 함락한다.

이들은 주민들을 학살하고 재산을 탈취하면서 교회의 재산도 수탈했는데, 이때부터 수 많은 성물들이 시중에 나와 돈으로 거래된다.

황실 보물창고에서 보관하던 예수의 가시면류관과 성스러운 창은 화를 면했지만, 투르크 오스만과 전쟁을 위해 자금이 필요한 동로마의 황제 ‘보두앵 2세(Baudouin II)’가 1238년 9월 베네치아 상인 ‘니콜로(Nicolo Quirino)’에게 4개월이 지나도록 빚을 갚지 못하면 가시면류관의 주인으로 인정한다는 조건으로 급전을 사용한다.

병력을 구하고 도움을 요청하고자 프랑스를 방문한 보두앵 2세에게 군대를 지원해 주지는 못하지만, 대신 예수의 가시면류관을 후한 가격으로 사주겠다고 루이 9세 생 루이가 약속한다.

생 루이는 1239년 약 300억 원 정도를 지불하고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받았으며, 1241년에는 그리스도가 매달렸다고 전해지는 십자가 조각을 위시한 각종 성물들을 수집해 이를 보관하기 위해 성당을 지을 것을 명한다.

 

당시 성당 건설에 약 90억 정도가 소요됐다고 하니, 가시면류관이 얼마나 비쌌는지 알 수 있다.

건축가 ‘삐에르 드 몽트뢰이(Pierre de Montruil)’가 1242년에 공사를 시작해 1248년 6년의 짧은 공기를 거쳐서 완공을 보게 된 것이 바로 ‘생트 샤펠’이다.

이 곳에는 예수가 썼던 가시면류관, 십자가 조각, 못 등을 포함한 성물들이 보관됐고, 왕실의 기도실과 미사를 보는 장소로 이용됐다.

성당 내부는 크게 아래층과 위층 두 부분으로 나뉘어 좁은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돼 있다.

아래층은 씨떼 궁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예배 장소이고, 맨 끝의 성소에 성모 마리아의 입상이 있으며, 좌측 벽의 문 위에 보이는 벽화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13세기의 벽화로 수태고지를 묘사하고 있다.

12개의 원형에는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의 모습이 보이고, 생 루이를 상징하는 코발트 색의 배경과 왕모 ‘블랑쉬(Blanche de Castille)’를 상징하는 보라색 바탕에 프랑스 왕조의 상징인 백합이 그려져 있다.

생트 샤펠의 위층으로 들어가면 성경의 ‘창세기’부터 ‘열왕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화려하게 장식된 천장을 향해 치솟은 높이 15m의 스테인드글라스들과 요한계시록을 묘사한 장미창을 비롯한 약 1천134장의 종교화가 있다.

성경은 좌측에서 오른쪽으로, 하단에서 위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지막 오른쪽 끝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생 루이 왕과 동생 ‘아흐뚜와’ 공작이 성물을 구입해 호송하는 장면들이 묘사돼 있다.

장미창은 1485년 ‘샤를르 8세’ 국왕이 기증한 것으로, 86개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요한 계시록’의 내용이 묘사돼 있다. 바로 이 곳에 성물들이 전시됐는데, 순례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왕실 소장품으로 극히 특정인만 접근할 수 있었다.

 

왕이 항상 10개의 열쇠를 갖고 다니고, 신임하는 누군가에게 열쇠를 위임할 때는 사인을 받아 놓았음에도 2번이나 예수가 달렸던 십자가 조각 일부를 도난당했으며, 후대에 신앙심이 부족한 왕들은 보석을 빼 내 팔아먹었다.

호모로 알려진 ‘앙리 3세’와 그의 어머니 ‘까트린 드 메디치’는 1555년 이탈리아에 저당 잡히고 돈을 빌린 것으로 의심을 받았고, ‘루이 14세’의 부인 ‘마리 테레즈 도트리쉬’는 부적처럼 십자가의 조각을 떼어내 아들의 몸에 지니고 다니도록 했다.

벽 기둥을 따라 12 사도들의 석상이 서 있고, 3면을 둘러싼 높이 15m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화려한 빛과 색의 향연은 현실이 아닌 하늘나라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이 곳을 방문한다면 반원형의 성소 높은 곳 성물이 주는 경외로움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영롱한 빛의 잔치를 경험해 보기 바란다. 단, 예수의 가시면류관은 맞은편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소장돼 있으며, 매월 첫번째 금요일 오후 3시에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정리=김장선기자 kjs76@



 

>>테마여행가 안완기는…

한국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의 건축을 공부했으며, 특히 프랑스의 풍부한 문화와 역사에 빠져 들게 됐다. 그는 이 나라의 문화에 대해 감상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는 수 많은 여행객들을 보면서 프랑스를 제대로 느끼고 배우는 정직하고도 건강한 여행문화를 꿈꿨다. 지난 2003년부터 프랑스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홈페이지(www.algogaza.com)를 제작, 운영해 유용한 프랑스 여행관련 정보 및 자료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약력>

- 1986년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 1992년 프랑스 유학

- 1995년 Strasbourg 건축학교 수학

- 1998년 Val-de-Marne Paris 건축학교 수학

- 2002년 프랑스 테마여행 전문 가이드

- 2006년 ‘알고가자 프랑스’ 테마여행사 운영

- 2014년 ㈜OECD 대표부 대외협력부 근무

- 2014년 9월~ ‘알고가자’ VIP여행사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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