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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처럼 떠 있는 ‘팔레드릴’은 한폭의 풍경화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
☞프랑스 안시

 

 

호수를 품에 안고 알프스산 병풍처럼 두른
고색 창연한 세계 아름다운 10대 도시로 꼽혀
생텍쥐페리, 절경 취해 비행항로 이탈 일화도

호텔 가는 길 잃고 헤매도 ‘눈호강’에 감사
골목길 걷다보니 장자크호 루소 머문 집 마주쳐
안시성 거쳐 호숫가 걷다 벤치 누으니 황홀경


오늘은 안시(Annecy) 행이다. 아름답기로 이름난 이탈리아 베니스의 운하와 벨기에 브뤼헤의 조경, 그리고 스위스 루체른의 호수가 가진 아름다움을 모두 갖췄다는 천혜의 도시 안시, 이름마저 친근해 꼭 한 번 가보기를 꿈꾸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왔다. 스위스 접경 지역에 있어 제네바로 들어가기 전에 운좋게도 하룻밤을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안시에서 제네바까지의 거리는 불과 35㎞에 지나지 않는다. 예약해둔 오베르쥬 두 리요네(Auberge du Lyonnais)는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데다 수로까지 끼고 있어 짧은 시간 안에 안시를 둘러보기엔 안성맞춤이다.

 


묵직한 리옹의 감동을 뒤로 한 채 안시행 버스에 오른 것은 오전 10시. 이미 3시간 동안의 시내 산책을 마친 후였다. 2박 3일 동안 리옹시내를 많이도 밟고 다녔다. 이제는 안시 차례다. 두 시간 동안 멋진 풍경을 뚫고 버스는 달렸다. 안개가 자욱한 초원을 지나, 점차 알프스 산악지대로 깊숙히 들어서면서 단풍 들어가는 산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안시가 가까워오자 해가 나왔다. 안시에 도착하니 눈이 시릴 만큼 푸른 하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이 있는 구시가지 쪽으로 걸었다. 돌바닥에 부딪혀 장중한(?) 소리를 내는 캐리어를 끌고 안시의 거리를 걸었다. 현대적인 건물들이 점차 물러나고 파스텔 풍으로 예쁘게 장식된 고풍스런 건물들이 다가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하가 보이고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구시가지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작은 강줄기는 두 개의 운하로 갈라졌다. 운하에는 맑은 물이 쉴새 없이 흐르고 곳곳의 운치있는 다리 위로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건너다녔다. 빨간 제라늄과 이름모를 꽃 화분이 놓여있고 앙증맞은 자전거가 묶여있는 운하의 다리들은 주변 건물과 어우러져 그대로 화보였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주소를 잘 찾아왔는데도 호텔은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맸다. 그러나 헤매는 것이 하나도 성가시지 않았다. 이 사랑스런 도시가 나를 받아준 것만도 감사하고 눈에 들어오는 이곳저곳 빠르게 눈에 익히느라 구시가지를 익힐 수 있어 좋았다.

한참을 헤매다 찾은 호텔은 생각보다 더 근사했다. 방 안의 모든 가구와 창과 커튼은 지은 시대의 양식을 하나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두었다. 책자들로 점점 무거워지는 가방을 들고 낑낑대며 3층까지 올라가는 일마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의 3층은 우리의 4층과 같아서 겹창문까지 열어젖히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좁은 골목길의 풍경이 잘 내려다보인다. 아래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앵글로 풍경이 잡히니 신기하다. 쉬지 않고 지나는 행인들을 내려다보며 마치 내가 여행자가 아니라 이 동네에 사는 거주민이 된 것 같은 즐거운 착각에 빠진다. 눈길을 돌려 방을 향하니 레이스로 끝을 정성스레 마무리한 코튼 침대보가 보인다. 너무 정갈해서 저절로 눕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친 김에 짐푸는 걸 미루고 1시간의 오수를 즐겼다.

신발끈을 매고 나와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좀 전에 내려다보던 그 골목길 위다. 맞은편 흰 건물 벽에 장자크 루소가 1927년에 머무른 집이라고 써있다. 반갑다. 교과서에서 보던 먼 이국땅의 작가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이것에서 가까운 제네바에서 가난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얼마되지 않아 죽고 10세 때는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 숙부에게 맡겨졌다. 16세 때 집을 나와 방랑을 시작하는데 그 사이에 안시에서 바랑 남작부인을 만나 그녀의 지원아래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게된다. 그 때 그가 머물던 바란 부인의 집이 바로 여기다.

 

 


람버트 하우스를 지나고 기쁨의 성모마리아 성당을 지나고 생모리스 교회와 성프란시스코 살레시오 성당을 지나 드디어 가장 고대하던 건물에 닿았다. 두 개의 운하가 합쳐지는 곳에 섬처럼 떠있는 고색창연한 팔레드릴(Palais de l’isle), 안시에 대해 검색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안시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다. 호수 위에 비친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 건물은 12세기 성주의 집이었다가 이후 행정관청, 감옥 등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된다.

산과 호수로 어우러진 이곳 구시가지 풍경은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들을 닮았다. 그것은 사보이(Saboy)가에서 오랫동안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의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던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다음 여정은 안시성(Annecy Castle), 운하를 벗어나올라가는 언덕길이 정겹고 다정하다. 집집마다 벽과 지붕을 뒤덮은 아이비 넝쿨이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다. 옛스런 건물과 잘 어우러져 남다른 가을의 감흥을 전해준다. 높다란 성의 아치문으로 들어가니 안이 넓다. 완전히 독립된 요새이자 별천지다. 13, 14세기 제네바 공국의 궁전으로 지어진 이 요새는 화재에 여러번 불타 재건되었다. 건물의 가장 오래된 부분은 12세기에 지어진 탑으로 독특한 문양과 함께 중세성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이 성에서 내려다보는 안시의 풍경이 압권이다.

2018년 동계올림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평창에게 자리를 내준 안시는 겨울스포츠의 도시로서 뿐 아니라 사계절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서정적인 도시로 꼽는 안시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안시호수를 품에 안고 있고 사방으로 아름다운 알프스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안시는 스위스와 접경 지역으로 35킬로만 가면 스위스 제네바다. 죽기 전 꼭 가봐야할 세계 10대 도시중의 하나로 손꼽히며 공군조종사였던 생텍쥐페리가 절경에 넋이 나가 항로를 이탈해 다시 돌아보았다는 일화가 있을만큼 아름답다.

과거 사보이 공국의 수도답게 고성들과 어우러진 프리 알프스의 길은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잇고 있어 교통의 요지로도 역할을 다한다. 구시가지의 다양한 건축 양식은 안시가 여러 도시의 문화를 융합해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군대병영으로 쓰이던 안시성은 1947년 안시 시에서 사들여 각종 전시 공간과 안시호수의 자연사(고고학) 박물관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매년 5월이 되면 에니메이션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한 ‘안시 국제 영화제’의 메인 행사장으로도 개방된다.

안시의 장점은 어디든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고 어디든 쉽게 닿아서 산책하기가 매우 좋다는 것이다. 성에서 내려와 호숫가를 한적하게 걸었다. 호수 맞은편의 너른 시민 공원은 노랗게 물들어가는 키큰 상수리 나무들 천지였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공원 한복판으로 걸어들어가 이번에는 벤치에 눕는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흘러가는 구름을 무심히 바라본다. 갑자기 시간과 장소에 대한 지각은 사라지고 나는 영원한 이방자인이 된다. /정리=민경화기자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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