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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간병인(看病人) 김(金)씨

 

 

 

그는 이제 나이 52세로 노련한 간병인이다. 간병의 세계는 거개가 여성들로 짜여져 있는데 그는 어쩌다가 이 세계에 뛰어들어 10여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개인병원에서 친척 할머니를 간병하다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 할머니가 퇴원을 하고 옆 침대에 있던 다른 환자가족이 그를 매우 좋게 보고 정식으로 간병인으로 채용하여, 간병인으로 갖춰야할 이런저런 요건을 지니게 된 셈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생활에 끼어든 지도 세월이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작은 체구에 눈치와 동작이 빠른데다 환자의 짜증이나 투정을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잘 받아주고 비위 역시 잘 맞추어 주는 기술이 뛰어나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깊은 신뢰와 호감을 받게 되었다. 거기다 팔 힘이 좋아 웬만한 환자는 가볍게 들고 옮기는 재주가 있었고, 환자의 가족들도 눈살을 찌푸리며 싫어하는 대소변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받아내고 뒤처리까지 말끔히 해주니 환영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개인병원에서 어깨 너머로 배우는 간병인이었지만 차츰 기술이 몸에 붙으면서 같은 동료였던 간병인들이 먼저 그를 찾게 되었다. 그 역시 일정한 직업이 없이 경비원이나 노가다판이나 닥치는 대로 일을 했었는데, 간병 일을 해보니 우선 보수가 쏠쏠했고 그동안 해봤던 일에 비해 편한 일이었고, 대소변 치우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다.

텃세가 다른 업종에 비해 좀 심한 편이고, 거개가 여자들이다 보니 시기가 심하였지만 그는 그저 눈 딱 감고, 거기다 입마저 딱 봉하고 있으니 같은 여자 동료들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았다.

동료들의 덕으로 종합병원으로 돌기 시작하자 그의 진가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주는 보수 외의 팁 명목으로 들어오는 수입도 괜찮았고 먹는 음식 역시 푸짐한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환자가 지방으로 요양을 떠날 때 따라가서 몇 달이고 어떤 때는 일 년 이상 체재할 때도 있었다. 물론 이럴 때는 보수가 거의 배로 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낮인데도 흐린 날씨 탓으로 병실 안은 햇빛이 들지 않았다. 누워 있는 환자들의 기분이 한결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모두 12병상인데 한결같이 거동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이었다. 그는 병상 사이를 천천히 환자들의 얼굴을 살피며 걸어 다녔다. 환자의 가느다란 동작이나 숨소리만 들어봐도 그 환자의 상태를 얼른 알아차릴 수가 있는 김씨였다. 8호 침대의 환자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아까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중소기업을 하다가 뇌졸중을 얻었고 병원 치료 후 조금씩 거동을 하다, 다시 재발하여 이 요셉병원에 들어온 지가 거의 1년이 돼 가는 환자였다. 찾아오는 사람이란 달랑 부인 혼자였는데 사나흘에 한번정도 들려 잠시 앉았다가 별 다른 말이 없이 가곤 했다. 자식들이 있다고 하는데 얼굴을 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요셉병원은 도심에 자리 잡은 5층짜리 건물이다. 장기 입원환자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한 달의 입원비가 웬만한 월급쟁이의 한 달 봉급이다. 그러니까 보호자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병원만 믿는다는 것이다.

김씨의 보조로 있는 40대의 박여사는 간병인 생활이 6개월도 안된 초보다. 교통사고로 가슴을 다쳐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3호 침대의 환자 목구멍에 호수를 넣고 가래를 뽑는 중인데, 김씨가 보기에는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도 습성처럼 잔소리는 하지 않고 챗 머리만 흔들었다. 8호 침대를 다시 들여다보다가 김씨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하고 간호사실로 인터폰을 했다. 간호사가 들어와 환자의 눈을 뒤집어 보고, 혈압을 재보고 하더니 급히 나갔다. 곧 이어 젊은 의사가 뛰어들어 와 다리의 맥을 오랫동안 짚었다. “보호자를 불러야 되겠어요” 의사는 옆의 간호사에게 말했다.

김씨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알고 있었다. 흐린 창가를 바라보던 김씨의 눈에 이슬이 맺히며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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