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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가난한 사람들

 

 

 

“그렇게 될 줄 몰랐던 거지요. 민심을 전혀 읽지를 못 했어요.” 그는 아들 얘기로 시작해서 자기 사업 얘기, 그리고 결국은 선거 얘기로 접어들었다.

“알다가 모를 게 민심인 것 같아요.” 나는 소주잔을 비우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건성으로 지껄였다.

“모르는 게 잘못이지요. 그걸 몰랐으니까 쪽박이 난거지” 그도 홀짝 소주잔을 입에다 털어놨다. 내가 그의 빈 잔에다 술을 채웠고, 그는 병을 빼앗듯이 받아 또 내 잔에다 소주를 부었다. 그리고 돼지 불고기 한 점을 입에다 넣고 씹었다. 나도 그가 하듯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고, 잘게 썬 파를 곁들여 넣고 씹었다. 그리고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나는 정치 얘기엔 흥미가 없었고, 그는 땡감을 씹은 듯이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기분이 잡친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화제를 그의 아들에게 다시 돌렸다.

“영남이가 내년, 군대에 갈 때까지 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지내야 할 텐데요” “그게 말이 아니야. 내 사업이 부도가 나니 애들까지 속을 썩여. 그놈의 담배는 왜 끊지 못하는지” “젊은 나이에 어디 그게 쉬운가요. 나이 든 사람처럼 건강에 신경을 쓸 겨를도 아니고”

우리는 다시 입을 다물고 술잔을 기울였다. 시간이 많이 지나갔던 모양이었다. 벅적거리던 술집은 여기저기 빈자리가 많아 한산해 보였다.

김 사장은 술이 많이 취한 듯했지만,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우리는 주차장에서 자주 마주쳤고, 그때마다 엄마네 동태집으로 동행했다. 그날도 지하 주차장에서 만났는데, 그는 여느 날과는 달리 대리 운전으로 차를 타고 온 것이다. 전작이 좀 있어 보였으나 나와 마주치자, 마다하는 나를 이끌고 이 단골집으로 온 것이었다.

그는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한때는 잘 나갔으나 근래에 들면서 그 대기업이 부도가 나면서부터 회사가 기울기 시작했다. 지금은 회사를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자기 계통의 회사들은 거의가 쓰러진 마당이라고 했다. 기업의 운영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였지만 이웃에서 자주 만나는 지인이 도산했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기가 짝이 없었다.

“밤중에 어딜 나가기에 바람이나 쏘이러 가는 줄 알았는데, 글쎄, 이놈이 담배꽁초를 주워와 제 방에서 그걸 까 신문지에 말아 피우잖나, 원 세상”

답답한 말이었다. 기가 찬 소리였다. 금년 봄에 대학을 졸업한 영남이는 취업을 하지 못하고 세칭 캥거루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항상 밝은 얼굴이었던 영남이는 근래에 들어서는 풀이 완전히 죽은 모습이었다. 나로서는 뭐라고 대꾸해줄 말이 없었다.

“영남이, 저한테도 놀러 오라고 하지요.” 그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놈의 담배 값은 왜 또 올려가지고 속을 썩여.” 하던 사업이 망가져버리자 모든 게 못 마땅한 모양이었다. 옆에서 보기에도 딱했다. 밝고 화목한 가정에 먹구름이 낀 것이 곁에서 보기에도 확연했다.

“경제가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누가 표를 찍겠나? 나같이 도산한 사람은 가슴에 한이 서려 있어. 나 같은 사람이 어디 하나 둘인가. 우리 계통은 거의 모두가 거덜 났어” “그 정도인가요?”

우리 같은 처지의 사람은 경제의 변동에는 민감하질 못하다. 기업이나 장사하는 업종과는 전혀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과는 경기가 좀 다르게 부진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는 실정이지만, 심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수도권은 더불어 민주당이 싹쓸이 했잖은가, 왜. 그 사람들이 좋아서 찍은 게 아니야. 그쪽도 노는 게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이쪽 보다는 좀 낫다, 이거야, 그러니까 이쪽이 싫어서 그쪽에다 찍은 거야” “그런 논리도 수긍이 됩니다”

김 사장은 열을 올렸고, 나는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과반수 당선이 목표라고?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 술집을 나와서도, 그는 혼자소리로 욕지거리를 하더니, 이윽고 노래를 불렀다.

“…선창가 고동소리, 옛 님이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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