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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이발사 김장로(長老)

 

 

 

그는 65세가 되면서 30여 년을 경영하던 이발소의 문을 닫았다. 이를테면 스스로 정년퇴직을 결정한 것이다. 이발소의 문은 닫았지만 이발(理髮)은 계속하였다. 한 달에 한번 영세한 아파트 복지관에 가 노인들의 이발을 해주었고, 또 인근의 종합병원에 가서 환자들의 머리를 깎아주었다.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해주는 것이었다. 월급쟁이 생활까지 합치면 40여 년의 이발 경력이 있으니까 그 기술은 머리를 한 번 깎아 본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맡기지 않고, 반드시 그를 찾았다. 그 정도의 출중한 기술이라서 복지관이나 병원에 그가 봉사(奉仕)를 나가면 그 아파트 외의 다른 아파트의 사람들도 모여 들었고, 병원에서는 환자들뿐 아니라 그곳의 직원들, 또 병원 밖의 사람들까지 모여들었다. 공짜라 그런 점도 있지만 그보다도 그의 탁월한 이발 기술에 연유한 까닭이 더 큰 이유였다.

이발소를 정년퇴직했지만 그는 이발소를 운영할 때보다 더 바빴다. 이발 봉사를 다니는 날을 제외하고는 한 주에 사흘은 장애아들을 수용하는 복지관에 가서 장애아들을 보살펴 주는 일을 했다. 물론 이발도 해주지만 목욕도 시켜주고 밥도 먹여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오락도 하며 놀아주었다.

그는 내가 나가는 교회가 아닌, 교회의 장로이다. 장로여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이발소를 운영할 때도 한 달에 이틀은 시간을 내서 그러한 봉사를 다녔었다. 그러므로 그는 봉사를 본업인 이발업보다 더 천직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러한 행각이 어찌된 일인지 주변에 두루 소문이 나버렸다. 그렇게 해서 어느 방송국에서 그를 초청해서 구라파 쪽 일주 여행을 시켜줬다. 학력이라야 중학교 졸업 정도였지만, 열흘정도 기간 동안 방송국에서 베푼 호화로운 여행을 그는 만끽한 셈이었다. 세상을 살다보니 그런 꿈과도 같은 일이 있을 수 있구나, 하고 그는 여행을 다녀와서도 자꾸 되새김질하곤 했다.

그리고 주일 낮과 밤, 또 수요일 밤에는 성경과 찬송가를 끼고 교회를 나갔고, 열심히 기도를 했다. 기독교 방송에는 시(詩)를 기고하여 방송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 방송국에서 극찬까지 곁들인 시는, 주(主)님의 십자가는 나무 십자가, 나의 십자가는 금 십자가,… 이런 식으로 나가는 시였다. 말하자면 자기는 목에다 금으로 된 십자를 매고 있는데, 주님은 그렇지를 못하다는 것이었다. 주님에게 매우 죄송하다는 뜻을 담은 시였다.

봉사를 다니고 남는 시간에는 헬스장에 가서 런닝머신도 하고 벤치프레스도 하며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의 나이가 이제 70이었지만, 보통 사람들은 외모로 보기에는 50대 중반 정도로 봐줬다.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자기 몸 관리에 아주 열심인데 그 이유가 있는 듯했다. 성품 역시 낙천적이어서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순전히 근육질의 몸이어서 한 겨울에 감기 한번 걸리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에게 마냥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인가 그에게 대형 사고가 있었다. 그의 부인에게 있는 사고였지만 그 모든 수고는 그가 떠맡아야 했다.

어느 날, 그의 부인은 성남에 사는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버스 앞 자리에 앉아 꾸벅거리며 졸고 있었는데 버스 앞을 가로 지르는 화물차가 있어서 버스는 급정거를 하게 되었다. 졸지에 일어난 일이라 맥을 놓고 있던 그의 부인은 앞으로 굴러 떨이지게 되었다. 버스 난간에 머리를 처박으면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병원에 실려 간 그녀는 잘 걷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하는 반신불수가 되었다. 정신 역시 온전치 못한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아내의 불행에 눈물로 세월을 보냈지만 현실 생활에 정신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었다. 살림살이는 그의 차지였고 하루 건너씩 아내를 목욕시키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혼자 뇌이곤 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이 까짓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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