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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흡연실은 장례식장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환자들은 그 흡연실에 모여 담배를 빨아댔다. 담배를 피우느라, 또 서로 간밤에 누구와 누구가 만나서 소주 몇 병을 마셨느니, 경비원한테 들켜 강제 퇴원을 당할 뻔하였느니,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하느라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는 달랐다. 늦은 밤에는 흡연실 앞마당에 검정 옷을 입은 방문객들로 성시를 이뤄 시끌시끌했다. 더러는 소주로 얼얼해진 혀로 소리를 높여 말을 했고, 여기서 한 무더기 저기서 한 팀이 어울려 시끄러웠다. 마치 장마당을 방불케 했다. 예전에는 사람이 죽은 초상집은 울음소리가 나거나 슬픔에 찬 말소리가 들렸으나 요즘은 그런 소리보다 방문객끼리 서로 나누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더 크게 나는 지경이었다.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참가하는데 그 의의를 두고 있어 끼리끼리 모여 낄낄거리는 게 눈에 띄는 장례식장 풍경이었다.

11시에 담당 경비원이 흡연실 출입문을 잠글 때까지 사실은 환자보다 장례식장에 오는 방문객들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므로 해서 주인 격인 환자들은 밀려나 대문 밖에서 죽치는 수가 많았다. 그래도 군소리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흡연실은 근래 들어 만들었다고 했다. 종합검진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는데 칼바람이 귀 끝을 쥐어뜯는데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허허 벌판인 후문 밖에서 후들후들 떨면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만일 그게 귀찮다고 마당가 세워둔 차 뒤에서 숨어 피우다 경비원한테 들키는 날이면 얼굴이 홍당무가 될 정도로 호되게 모욕을 당하곤 했다. 그 꼴을 당하지 않으려고 엄동설한 추위를 견디는 노릇을 해야 했다. 요즘은 어디서든 그러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사람 취급 하지 않는 실정이다. 애연가들의 서러움은 그래서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었다. 이러한 처지를 헤아려준 이가 새로 오신 병원장님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사람이다, 하는 견지에서 흡연실을 지어준 그분은 애연가들에게는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장례식장 앞에다 그것을 차려놨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들어설 자리가 그곳뿐이어서 그러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모두들 하고 있었지만 좀 기묘한 기분을 자아내는 것은 사실이었다. 끽연과 죽음. 이런 관계를 자연히 연상시키는 일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죽어서 리무진을 한번 타보겠네” 장례식장 앞에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검은 리무진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빈정거리는 우리 쪽 환자가 있었다.

“죽은 사람이 리무진인지 리어카인지 알겠나?” 맞장구 치는 이도 있었다.

새벽녘이면 어수선한 분위기는 싹 가시고 가라앉은 공기처럼 차분하고 자못 엄숙한 질서가 연출된다. 애연가들은 워낙 부지런해서 동이 트기 전부터 모여 들어 담배를 피웠다. 그래서 보기 싫어도 보아야 하는 광경이 나타나는 것이다. 시골 먼 선산으로 떠나는 영구는 아예 일찍부터 떠나기를 서두른다.

검정색옷으로 차려 입은 남녀가 리무진 곁으로 둘러서면 리무진 운전기사가 간소한 예식을 집전한다. 뭐라고 판에 박힌 소리를 지껄이고는 짧게 말한다. “묵념!”

잘 차려 입은 영감님의 영정을 가슴에 안은 사내를 필두로 모두 머리를 숙인다. 모두가 정예들이다. 간밤처럼 떠들거나 웃는 사람은 없다. 엄숙한 예식이 마쳐지면 관이 들어간 리무진의 뒷문이 닫힌다. 그리고 리무진이 떠나고 조용한 정예들을 태운 버스가 따라 떠난다.

그 다음 팀은 좀 다르다. 중년여자의 영정을 든 젊은 여자 곁에서 목사님이 예식을 집전한다. “권사님의 영혼을 보살펴주시고….”

그리고 구슬픈 소리로 찬송가를 부른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주와 함께 계셔…….

앉아 담배를 빨고 있던 환자 흡연가들 쪽 암환자 한명이 중얼거렸다. “이거, 남의 일 같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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