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9 (월)

  • 구름많음동두천 26.8℃
  • 구름많음강릉 30.6℃
  • 구름많음서울 27.3℃
  • 구름많음대전 26.6℃
  • 맑음대구 26.7℃
  • 맑음울산 26.5℃
  • 흐림광주 26.7℃
  • 구름조금부산 27.1℃
  • 맑음고창 27.0℃
  • 맑음제주 27.0℃
  • 구름많음강화 26.2℃
  • 구름조금보은 25.3℃
  • 맑음금산 24.8℃
  • 맑음강진군 24.9℃
  • 맑음경주시 28.0℃
  • 맑음거제 27.0℃
기상청 제공

삶과 죽음의 경계 무거운 고민에 숙연

함부로 허락지 않는 ‘신의 봉우리’ 마테호른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
스위스 체르마트 2

 

체르마트 시내 있는 마테호른 박물관
첫 등반 150주년 기념 행사 포스터 게시

100년 넘은 전통가옥들 멋스러움 더해
개천 지나니 마테호른 봉우리 한눈에

성당 뒤쪽엔 여러개 돌비석들 있어
산 오르다 변당한 알피너 넋 기려

17살에 생 마감한 어린 친구 비석앞에
차마 발걸음 떼지 못한 무거움 느껴

오늘 오전은 체르마트 시내를 차분히 돌아보기로 했다.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갑다. 우연한 기회에 들르게 된 로쉐 호텔학교에서 구입한 털모자를 귀까지 덮어쓰고 오리털 파카로 단단히 무장한 채 밖으로 나선다. 호텔에서 열 발자국만 나서면 체르마트의 중심가 반호프 거리다. 하루를 여는 아침임에도 이곳에선 분주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상큼한 도시의 아침 냄새를 폐부 깊이 호흡하며 걷는다. 배낭이나 스키를 어깨에 맨 사람들이 지나가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주민들이 지나간다. 전기차도 이따금씩 지나간다. 거리에는 나무로 만든 샬레 스타일의 호텔과, 뽕뒤와 라클레트를 파는 레스토랑, 아웃도어 용품과 의류매장, 기념품 가게들이 이어진다. 빵집 앞을 지날 때는 고소한 빵냄새가 발목을 잡는다.



 

 

 

어느새 마테호른 박물관이다. 마테호른 첫 등반 1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포스터가 크게 걸려있다. 그 뒤로 현대적인 외관의 박물관 입구가 보인다.

등산 장비도 제대로 없었을 150년 전에 어떻게 그 험하고 높은 봉우리에 올랐을까. 금단의 고지 마테호른 등반에 처음으로 성공한 것은 1865년 7월, 영국인 등반가 에드워드 윔퍼(Edward Whymper)가 꾸린 로프 팀 일곱 명에 의해서다. 그러나 무사히 돌아온 것은 세 명 뿐. 박물관은 내일 시간을 따로 내서 꼭 둘러보기로 한다.

박물관 광장 코너의 샘에서 물개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윔퍼 동상이 있는 카페 앞 공터로 간다. 내게 ‘하이~’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아줌마를 만난다. 뮤(Meaw)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태국인이다. 독일남자와 결혼해 하이델베르크에 자리잡은 지 오래됐다고 한다. 유럽을 여행하고 싶어하는 태국 사람들을 소그룹으로 가이드하는 일이 그녀의 부업이다.

차를 대접하겠다는 그녀의 제안으로 그녀가 일행과 묵고있다는 샬레로 간다. 켈틱 풍의 교회를 지나 언덕을 한참 올라가니 전망이 탁 트인 곳에 그 샬레가 있다. 그 집의 둥그런 거실은 온통 창이다. 찻잔을 들고 내려다보니 체르마트의 다른 풍경이 보인다. 반대편 산 위로 황금빛 해가 떠오르고 있다. 그 햇살에 비친 체르마트 지붕들이 아름답다.
 

 

 


그녀 집에서 나와 걷다보니 목동이 부는 긴 나팔 조각이 계단 위에 멋스럽게 조각된 시청건물과 만났다.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푸근하고 멋스러운 성 마우리티우스 성당을 비롯해 조금만 더 가면 발레 지방의 전통가옥이 밀집해있는 힌터도르프(Hinterdorf) 거리로 들어선다. 100년이 훌쩍 넘은 그 가옥들은 아직도 주민들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떤 집에는 사무실 간판이, 또 어떤 집에는 민박집 간판이 걸려있다.

조금 더 걸어서 개천이 보이는 곳으로 간다. 개천을 잇는 다리 위에 서니 마테호른 봉우리가 시야 정중앙에 들어온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하나’의 봉우리에 지나지 않을 마테호른이 내게는 매번 특별한 무엇으로 다가온다.

다시 몸을 돌리니 제법 큰 극장이 눈에 띈다. 입구의 안내판을 보니 몇 개의 공연이 공지돼 있다. 이런 작은 도시에서도 주민을 위한 공연이 꾸준히 올려지고 있다니 왠지 기분이 좋다. 언덕길을 계속 오르다 보니 어떤 이의 부조가 새겨진 분수가 보인다.

부조에 가까이 다가가 누구의 것인지를 본다. 울리히 인데르비넨(Ulrich Inderbinen)이다. 1900년 12월에 태어나 2004년 6월에 사망했다고 적혀있으니 104년을 장수한 행운의 사나이다.

체르마트 출신의 전설적인 산악가이드인 그는 21살에 누이와 첫 등정을 한 이후 25살에 정식으로 산악가이드가 됐다고 한다.
 

 

 


이 분수는 그의 100세 생일을 기념하여 마을에서 세워준 것이다. 그가 유명세를 탄 것은 90세까지 마테호른을 도합 371번 등정해서가 아니다. 1990년 마테호른 첫 등반 125주년을 기념해 스위스 공영방송에서 그를 특집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도 현역이던 그는 96세에 브라이트호른에 오르다 입은 상처로 아쉬운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 마테호른 박물관에 가면 그의 기록을 볼 수 있다니 내일 그곳을 방문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골목 사이로 더 올라가 공원을 지나니 아까 그 성당과 다시 만났다. 성당 뒤쪽에 놓인 여러개의 돌비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돌판의 이름과 생몰년도가 내 몸에 소름을 돋게 한다. 대부분 20대, 혹은 30대, 간혹 10대의 것도 보인다. 많은 비석이 마테호른 산봉우리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동네의 정식 공동묘지는 다른 곳에 있다. 그러니까 이곳은 산에 오르다 변을 당한 알피너들만 기리는 전용 무덤인 셈이다.

17세 어린 친구의 비석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나는 그곳에 있는 모든 돌판 앞의 이름을 하나 하나 옮겨가며 읊조린다. 그렇게 하는 동안 내 안에서 시간이 분절되며 뜨거운 것들이 흘러간다.

 

 

 

오래 전에 읽은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이 책이 생각난다. 그는 1978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등정한 이후 세계의 고봉을 차례로 석권(이런 단어를 쓰는 것이 그를 오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한 명실공히 금세기 최고의 알피니스트다. 그가 쓴 책 ‘죽음의 지대’ 때문에 나는 등반하는 이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됐다. 그 전까지는 목숨을 걸고 등반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내게 아주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내가 그 책에 관심을 가진 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저 녀석은 그만두지 못할거야. 산에 병이 들었거든..’ 매스너가 자랄 때 자주 들었던 말이다.

이곳에 누운 이들도 그처럼 모두 산에 병이 든 자들일까. 목숨을 잃을 걸 알면서도 산에 드는 걸 스스로 막을 수 없었던 사람들일까. 어떤 이는 야망과 치기로 등반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등반을 거듭하는 사람이라면 하나의 내적수행으로 그 등반이 전환되는 시기가 있다고 매스너는 말한다.

그럼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아무에게나 허용된 건 아닐 것이다. 자녀가 넷인 나에게 가장 큰 공포는 자녀를 잃는 것이다.

 

 

 

나의 죽음보다 그것이 나에게는 더 큰 공포고, 넘어서지 못할 장벽으로 여겨진다.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라면 대부분 그럴 것이다. 죽음을 담보로 등반하는 사람들, 특히 어린 친구들의 경우, 나는 늘 그 부모들을 생각한다. 그러니 특히나 17살 어린 친구의 비석 앞에서 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 우리 아이 중 누가 그런 등반 병에 걸린다면 나는 어떻게 하겠는가. 죽음이 삶과 격리된 다른 세계가 아니고 삶의 자연스런 연장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그건 이성 차원에서일 뿐이다. 언젠가, 친구 따라 암벽등반을 해보고 싶다는 첫째의 말을 듣고 일언지하에 ‘안돼’ 라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 특히 내 아이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나를 옥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죽음에 관심이 있고 그 공포를 넘어서고 싶다.

그래서 매스너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무덤과 정상이 종이 한 장 차이 밖에 안되는 지점에서 알피너들이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한 평화라는 그의 말에 밑 줄을 긋는다.

가볍게 시작한 산책에서 나는 내가 대면해야 할 숙제와 무겁게 마주한 기분이었다.(다음 편에 계속)/정리=민경화기자 mkh@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