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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와 현대의 공존 곳곳에 매력이 철철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발칸반도에 있는 ‘유럽의 미니어처’

 

 

바로크양식 건물 등 5천년 역사 간직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단 보유

류블랴나, ‘사랑한다’는 슬라브어에 유래
프레세렌 광장, 생기 가득해 공연 명소로
한국 여행친구들, 현지인과 댄스타임도 추억


슬로베니아는 유럽 발칸반도 북서부,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하며 ‘유럽의 미니어처’로 불릴 만큼, 알프스, 지중해, 중세 도시의 매력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알프스 설산, 호수, 광천 온천 지대, 와이너리 등 다양한 볼거리를 보유하고 있어 세계 관광객들이 앞다투어 찾는 곳으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는 2014년 론니플래닛이 선정한 최고의 유럽여행국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류블랴나는 깨끗한 자연 경관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풍부한 전통, 젊은 활기 등이 공존하는 도시로 이번 ‘최고 유럽 여행지’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로마의 도시 에모나(Emona)의 중세 성곽부터 바로크 양식 건축물 등 지난 오천년의 다양한 역사물을 보존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단이 있어 매년 1만여 개에 달하는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2009년 여름 슬로베니아를 찾아 여행 말미에 수도 류블랴나에 들렀다. 류블랴나(Ljubljana)는 ‘사랑한다(Ljubit)’는 슬라브어에서 유래했다. 류블랴나는 그 유래만큼 사랑스러움을 가득 머금고 있는 도시였다. 서유럽의 전통적인 느낌을 도시 곳곳에서 찾을 수 있으며, 알프스에 둘러쌓여 있어 전원적인 분위기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자유로우면서도 생기 넘치는 이곳의 중심에는 프레세렌 광장이 있다. 슬로베니아 대표 서정 시인 프란츠 프레세렌의 동상이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이 광장은 다양한 공연을 비롯해 한적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어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곳이다. 슬로베니아 여행을 마치는 아쉬움에 젊음이 가득한 프레세렌 광장에서 거리공연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누가 먼저 낸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의 마지막을 거리 공연으로 꾸미자는 의견에 모두 동조했고,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 틈만 나면 노래 연습을 했다. 버스 안에서 열심히 연습하는 그들을 보며 이미 내 머리 속에는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들은 준비하는 동안 충분히 스스로를 즐겁게 만들었고, 그들에게 그 과정이 이미 축제였다. 버스 안의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동참해 공연단의 사이즈가 제법 커졌고 공연전 설레임은 점점 고조됐다.

류블랴나 시내에 도착하기 전에 전체 미션 하나가 전달됐다. 조그만 것이라도 좋으니 빨간 것으로 자신을 코디할 것. 빨간 색은 여행하는 사람의 가방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색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용케 빨간 색들을 찾아내 달고, 매고, 입고 자신을 꾸미고 등장했다. 공연하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다가 우리는 프란시스코 성당이 마주 보이는 프레세렌 동상을 발견했다. 그곳 아래 설치된 둥근 계단은 공연하기에 완벽해 보였다. 광장 앞으로 열려진 그 공간은 지나는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 잡기에도 더 할 수 없이 훌륭해 보였다. 몇몇 처자들은 분장을 한다며 화장실로 내달리기도 했다.

이 여행의 리더였던 구본형 선생님은 사비차 폭포를 보러 가던 날 숲에서 주어온 산신령 지팡이를 들고 빨간 코의 광대로 멋지게 변신해 있었다.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두터운 입술은 꽤나 섹시해 보여 미소가 지어졌다. 완벽한 거리의 광대를 자처하며 그는 광장을 마냥 쏘다녔다. 파란 눈의 이국 소녀가 머뭇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한국에서 배낭 여행 온 아가씨도 그에게 다가와 사진찍기를 청하는 등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우리 일행 중의 한 대원이 모자를 벗어 광장 중앙에 놓았다.

 

 

‘반갑습니다’라는 노래의 멜로디를 차용해 ‘헬로 베니아, 슬로베니아~’를 합창하는 것으로 우리의 공연은 시작됐다. 한 멤버의 기타와 또 다른 멤버의 하모니카 반주에 맞춰 ‘꼬부랑 할머니’, ‘조개 껍질 묶어’ 같은 옛날 노래들이 줄줄이 연주됐다. 길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 앞에 동그랗게 모이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사람들의 숫자에 고무되돼 우리들의 노래는 더욱 신나고 발랄해졌다. 모자에도 동전이 쌓여갔다. 사람들의 관심과 환호에 나도 모르게 몸이 일으켜 앞으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노래의 운율을 타고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워본 적은 없지만 춤을 추고 싶은 충동은 언제나 내 몸 속에 숨어있었다. 이렇듯 환희의 순간이 찾아오면 나의 몸은 뇌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먼저 반응을 한다. 춤추는 동안 오장육부가 열리고 영혼과 몸이 완벽히 소통하는 그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나는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공연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고 우리는 더욱 신이나 공연을 이어갔다. 체면과 부끄러움은 그 자리에 없었다. 오히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사람들의 분방함이 그들을 감염시켰다. 어떤 이는 우리가 앉은 계단으로 다가와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함께 춤을 청하기도 했다. 여성들의 댄스가 이어지자 . 무리 속에서 아저씨들이 나와 신나는 댄스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국적 없는 스텝을 밟으며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 그들 입에서는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알프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풍경 속에 슬로베니아 사람들과 하나된 이날 공연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공연이 끝나자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을 건냈다.

“내년에 여행에는 더욱 멋진 공연을 준비해 주세요.”

아무래도 몇 년 후에는 영국의 애딘버러나 프랑스의 아비뇽 같은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될지도 모르겠다./정리=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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