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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지킨 선조의 애국심 기리고 선비들의 풍류와 지혜를 품는다

 

 

 

행주나루길·반구정길

조선시대 만들어진 송와잡설(松窩雜說)에는 중용의 도를 실천한 황희 정승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어느 날 황희 정승 집의 계집종 두 명이 다투고선 한 계집종이 황희 정승에게 와 자기 사정을 하소연했다. 이에 정승은 “네 말이 옳구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계집종도 자기가 옳다고 주장했고 황희정승은 이에 “네 말도 옳다”라고 답했다. 그 옆에서 이 광경을 보던 조카는 “아저씨는 너무 흐리멍덩하십니다. 아무는 저렇고 아무는 이와 같으니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해주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황희는 다시 “너의 말도 옳다”라며 글 읽기를 그치지 않아 끝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흑이 아니면 백이 너무도 분명해서 말도, 탈도 많은 이 시대에 중용의 도를 실천한 황희 정승은 더욱 그리워진다.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경기도에는 황희 정승과 같은 지혜로운 옛 선비들의 자취를 따라가볼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 지혜로운 옛 선비들의 풍류와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길, 평화누리길 행주나루길(4코스)과 반구정길(8코스)을 따라 역사·문화 이야기를 걸어보자.
 

 

 

 

 


행주산성∼호수공원 이어져

도심속 전원풍경 느낄 수 있어

행주산성에선 한강이 한눈에


권율 장군의 숨결이 살아있는 행주산성, 고양 행주나루길

평화누리길 4코스 행주나루길은 순찰로구간 11㎞와 임시구간 10.1㎞로 나뉜다.

행주산성부터 고양 호수공원까지 이어지는데 옛 나루터가 위치했던 행주대교 아래를 지나고 도심 속 전원 풍경을 볼 수 있는 농로로 이어진다.

순찰로구간은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행주나루길의 시작점인 행주산성은 한강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에서 진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리는 행주대첩이 일어났다.

임진왜란 때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대파한 것이 바로 행주대첩이다.

3만여명의 왜군을 사투 끝에 섬멸, 국난을 극복한 승리의 현장인 것.

전쟁을 승리로 이끈 권율장군은 46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무과가 아닌 문과에 급제한 문무를 겸비했던 장군이기도 하다.

전라순찰사 권율은 명군과 힘을 합쳐 서울 수복을 위해 수원에 머물다 명군이 백제관 전투에서 패하고 개성으로 퇴각하자 1593년 2월 1만여 병력을 고양군 행주산성에 집결시켰다.

왜군은 3만여 병력을 3진으로 나눠 9차례에 걸쳐 성을 맹공격했으나 결국 패퇴했으며 조선군은 퇴각하는 왜군을 추격해 큰 피해를 입혔다.

이 싸움에서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짧게 잘라입고 돌을 날라 왜군에게 던짐으로써 승리에 기여한 데서 지금의 행주치마가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이 곳에는 고대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항쟁하면서 쌓은 토성으로 권율 도원수의 사당인 충장사와 행주대첩비, 기념관 등이 있다.

행주산성에서 내려와 평화누리길 이정표를 따라 걷다 좌측으로 꺾으면 행주나루로 이어지는 강변길이 시작된다.

이어 옛 나루터가 위치했던 행주대교 아래를 지나게 되는데 행주나루와 행주산성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오른다.

주변 평야가 훤히 조망되는 덕양산은 강 건너 마주한 개화산과 더불어 강을 통해 진입하는 적을 방비하기에 적격이었고 한강은 반도의 중심으로 진출하기위한 유일한 물길이자 서울지역 주민의 생명수였다.

행주나루는 바로 그 한강의 길목이었는데 과거엔 강 건너편에서 ‘사공’하고 부르는 소리만 들려도 노를 저어 건너가 나룻배로 강을 건네줬다고 한다.

특히 한강의 많은 포구와 나루 중에서도 행주나루는 아주 특별했는데 서해로 수송된 전국의 세곡과 세금, 생선과 물자를 도성으로 실어 나를 때 반드시 들렀던 중간 보급기지이자 국제교역항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주나루의 역사는 지난 1978년 행주대교 개통과 동시에 나룻배와 함께 사라졌다.

당시 나루는 백사장이었는데 지금은 수중보 설치로 인한 수면 상승과 개흙 축적으로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오직 ‘행주나루터’ 표석만이 여기 나루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평화누리길 8코스로 총 13㎞

농촌의 들판·야산 어우러진 곳

황희 정승, 반구정에서 여생 보내

율곡은 화석정서 詩作·풍류 즐겨


선조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반구정길

평화누리길 8코스인 반구정길에선 옛 선비들의 지혜와 풍류를 느끼며 걷기 좋은 길이다.

총 13㎞구간으로 반구정에서 시작해 화석정까지 농촌의 들판과 야산이 펼쳐진다.

이 길에서 우리나라 대표 안보 관광지인 임진각과 DMZ 내에서도 생태의 보고로 손꼽히는 초평도를 조망할 수 있는 장산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코스 시작점인 반구정에서부터 옛 선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초 태조~세종에 이르기까지 네 임금을 받들었던 재상, 황희 선생은 ‘청백리’로 불리며 이 나라 역사에서 가장 빼어난 정치가 중 하나로 꼽힌다.

임진강변 작은 봉우리에 세워진 반구정은 황희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18년동안 재임했던 영의정에서 물러난 황희 선생은 이곳에서 당대 선비들이 추구하던 소박한 헤아림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살면서 어부들과 잘 어울려 놀았는데 임진강변의 어부들 중 그 누구도 그가 황희 정승이란 것을 몰랐다는 일화에서 그의 소박한 삶을 느낄 수 있다.

반구정을 나와 농로를 지나면 철길 건널목에 닿는다.

이 철길은 파주를 관통하는 철로이자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518.5㎞를 잇는 경의선이 지나고 있다.

경의선은 약 100년전인 1904년 러일전쟁 발발 당시 일본이 군용철도 목적으로 부설했다.

철길을 지나 만나는 임진각과 임진강 유일한 섬 초평도, 그리고 초평도를 마주하는 장산전망대까지 코스 곳곳에 숨은 명소에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반구정길의 종점인 화석정도 빼놓을 수 없다.

장산전망대를 내려오는 길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산길인데 산을 내려오면 37번 국도가 지나고 평화누리길은 국도 아래로 난 작은 길을 따라 화석정으로 이어진다.

임진강이 굽어보이는 강가 벼랑에 자리한 화석정은 풍광이 아름답고 운치 또한 빼어난 곳이다.

율곡의 5대 조부인 이명신이 처음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 붙였다.

임진강의 유려한 물줄기는 물론 맑은 날에는 멀리 서울의 삼각산과 개성까지 아득하게 보이는 화석정에서 율곡 이이는 수시로 이곳에 올라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 화석정에는 이이와 선조에 관한 일화가 전해져온다.

율곡은 살아 있을 때 이곳에서 틈나는 대로 화석정 기둥에 기름을 발라두게 했다. 율곡이 죽고 8년뒤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급하게 서울을 빠져나와 의주로 피란길에 오른 선조는 주위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임진강가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강 전체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알고보니 선조의 피란길을 수행하던 이항복이 기름을 먹인 이 정자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 불빛으로 선조는 무사히 임진강을 건넜다고 한다.

화석정은 그 뒤 80년만에 복원됐다가 한국전쟁때 소실됐던 것을 지난 1960년대 파주 유림들이 뜻을 모아 다시 세운 것이다.

/이슬하기자 ra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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