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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전쟁이 곳곳 할퀴고 간 41㎞ 굽이굽이 山河는 아름답게 웃고있네

 

율곡길·고랑포길

파주와 연천은 6.25전쟁의 상흔이 많은 곳으로 손꼽힌다. 치열한 전투로 인해 불타버린 가옥과 파헤쳐져버린 산등성이, 흙길이 돼버린 마을 논밭까지. 그런데 이런 모습과 달리 또 다른 파주·연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들이 있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6.25전쟁을 돕기위해 파견나와 주둔하던 외국 군대들이 파주 연풍리, 선유리, 장파리, 늘노리, 봉일천, 영태리 등 곳곳에 자리했었다. 지난 1971년 미군 2사단이 동두천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6.25전쟁 이후 대규모 미군 부대가 주둔했던 파주 장파리 일대는 잘 나가는 기지촌이었다. 지금은 극장 하나 볼 수 없지만 1960년대에 이미 영화관이 있었고 미군을 상대로 클럽과 온갖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로 넘쳐났었다. 특히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로 손꼽히는 가왕 조용필도 무명시절 이 마을의 클럽 ‘블루문홀’에서 노래를 불렀다. 연천은 분단의 아픔을 예술로 표현한 석장리미술관이 위치한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설치미술 작가들이 직접 운영하는데 이 곳에서는 ‘자연스러움’의 미(美)를 만나볼 수 있다. 이렇듯 전쟁의 상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역사를 따라 흐르는 길, 평화누리길 율곡길(9코스)과 고랑포길(10코스)을 걸으며 역사·문화 이야기를 알아보자.
 

 

 


■ 밤나무골로 불렸던 이이의 고향 율곡길

율곡습지공원∼황포돛배 코스

주상절리가 빚어낸 산책로 장관

겸제 정선도 진경산수화에 담아


평화누리길 9코스는 파주의 마지막 코스 율곡길이다.

율곡길은 총 17㎞로 율곡습지공원에서 시작해 황포돛배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 위에 만들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임진강 황포돛배를 만나볼 수 있다.

코스 시작점인 율곡습지공원은 버려졌던 습지를 가꿔 가을이면 수만 송이의 코스모스가 피어나는 장관이 펼쳐진다.

이 곳의 행정구역명은 파평면 율곡리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였던 율곡 이이의 고향으로 이이는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벼슬길에 오른 뒤에도 이이는 이곳을 즐겨찾아 생각을 정리하고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이의 호인 율곡도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골이라 불린 이곳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율곡습지공원을 지나 임진강을 따라 서있는 철조망 길목에서는 잠시 잊었던 한국전쟁의 아픔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지하차도를 건너 37번 국도의 오른쪽 갓길에서는 지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두문리의 ‘두’자와 장포리의 ‘포’자를 따서 이름지어진 두포리를 만나게 된다.

마을의 이름에서 과거 이곳이 포구를 중심으로 들어선 곳이란 걸 짐작케한다.

은어와 피라미가 많이 산다는 눌노천 위 금파교를 지나면 다시 임진강과 조우하게 된다.

다시 만난 임진강변을 따라 평화누리길 9코스의 절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신생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와 그 위에 만들어진 적벽 산책로다.

장파리 적벽은 임진 8경 중 하나로 약 60만년 전 철원 부근에서 분출한 용암이 만들어준 풍광이다.

주상절리는 햇빛을 받으면 절벽 전체가 붉은 빛을 띤다고해 적벽이라 이름 붙여졌다.

풍류를 즐기던 옛 양반들은 이 적벽의 풍경을 배경 삼아 뱃놀이를 즐겼다고 하는데 적벽의 풍광은 지금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당대 예인들은 적벽의 풍경을 글과 화폭으로 옮기기도 했는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대가 겸제 정선 역시 임진강에서 뱃놀이를 즐겼으며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고 한다.

옛 예인들과 함게 적벽 풍경을 즐기며 장파사거리를 지나면 율곡길의 종착지인 두지나루에 다다른다.

두지나루는 북녘땅에서 시작한 물길 사이로 남과 북을 잇는 황포돛배가 오가던 시절이 쌓여있는 포구다.

약 60년전만 해도 두지나루터에서 서해의 해산물을 비롯한 각종 지역 농산물이 돛배에 실려 크게 왕래됐지만 남과 북이 나뉘고 임진강 자체가 민통선이 되면서 이제 그 풍경은 역사의 한자락으로 숨어버렸다.

지금의 두지나루에도 황포돛배 두 대가 나란히 서있는데 과거 물자를 나르던 배가 아닌 유람선이다.

반세기 넘게 왕래가 끊겼던 황포돛배는 지난 2004년 복원돼 관광객을 위해 일부 구간만 운행을 시작했지만 현재는 운영상 문제로 휴업상태다.
 

 

 


■ 임진강에서 가장 번창했던 포구, 고랑포를 기억하고 있는 고랑포길

평화누리길 12코스 중 가장 길어

하루에 완주하려면 새벽 출발을

종점은 숭의전… 주변 경관 수려


평화누리길 10코스 고랑포길은 연천의 첫번째 구간이다.

총 24㎞로 황포돛배에서 숭의전지로 이어지는데 두지나루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이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어 이 구간을 포함하면 26㎞, 평화누리길 12코스 중 가장 길다.

하루만에 완주하기위해선 새벽 일찍 길을 나서야한다.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장남교’를 향해 시작된 고랑포길은 최북단 휴전선과 접하며 반쪽이 된 연천을 맞이하게 된다.

조선시대 문신인 홍귀달이 ‘산은 첩첩이 돌아들고 물은 구불구불 흐른다’라고 읊을 정도로 산과 물이 조화를 이뤄 살기 좋다.

다리를 건너면 조선초 장단현을 다스리던 고을 원님의 관저인 원당이 있었다해 ‘원당리’라 불리는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지난 1945년 해방 이후 일부 지역이 38선 북쪽에 위치해 공산치하에 놓였었다.

한국전쟁 후 원당리 전 지역이 군사분계선과 인접한 민간인 통제구역에 속해있다가 1962년 민간인 입주가 허용돼 현재 마을이 형성됐다.

고랑포길에서 고랑포를 빼놓을 수 없다. 고랑포는 개성으로 보내는 물자가 교류했던 임진강에서 가장 번창한 포구중 하나로 대규모의 저잣거리와 화신백화점이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이다.

수심이 얕아 한국전쟁 때 인민군 탱크부대가 건너왔고 남파공작원 김신조의 남한 침투에 이용됐던 여울목이다.

지금은 무성하게 우거진 갈대숲만이 옛나루의 명성을 대신한다.

고랑포길의 종점은 숭의전이다.

숭의전은 조선이 세운 고려왕조의 사당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지리적으로도 북방의 외진 곳에 위치해서인지 숭의전(국가사적223호)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당이다.

연천군 미산면에 위치한 숭의전은 1397년(태조 6)에 태조 명으로 묘를 세우고 1399년(정종 1)에는 고려 태조와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선종, 목종, 현종 등 7왕의 제사를 지냈다.

문종은 이곳을 숭의전이라 이름짓고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와 열다섯 사람을 제사지내도록 했으며 고려 왕족의 후손들이 이 곳을 관리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가 이를 계승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전각이 소실됐다. 이후 지난 1973년 왕씨후손이 정전을 복구했고 국비 및 지방보조로 1975년 2월에는 배신청 13평을, 1976년 1월에는 이안청 8.7평, 이듬해 2월에는 삼문(三門)을 신축했다.

숭의전 입구 좌측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는데 왕의 영정과 위패를 모셨으니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역사와 함께한 숭의전 주변 풍광 또한 수려한데 발 아래로 임진강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올 통일의 날을 기도해본다.

/이슬하기자 ra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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