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경쟁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적인 트라우마나 치부는 숨겨야만 하는 존재다. 그러나 눈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더 큰 흉터가 돼 삶을 힘들게 한다.
수원에 위치한 해움미술관은 개인의 트라우마, 상처를 전시장에 가득 채웠다. ‘상흔의 초상’ 전시는 어둡고 아픈 누군가의 상처로 가득하지만, 당당하게 마주한 상처를 보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통제’ 시리즈를 선보이는 박성모 작가는 온라인을 통해 많은 이들과 소통하지만 정작 깊이와 본질이 없는 관계 속에 삶이 척박해질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뭉개진 얼굴 속에 우리의 삶을 투영한 손민광 작가는 개인의 정보가 다양하게 활용되는 현대사회에서 상처받은 우리의 모습을 그렸다.
“제가 생각하는 상흔이란, 한 가지 현상을 서로 다르게 쌓아 굳어져온 많은 생각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이해의 표피’라 생각한다”고 밝힌 이원태 작가는 시간의 ‘겹’을 시각화했다. 그는 오일로 겹을 만들어 캔버스에 켜켜이 쌓았고, 모여진 상처의 흔적은 내면을 보호하는 갑옷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를 통해 상처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정의철 작가는 상처입은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그의 ‘낯설다’ 작품은 매일 봤던 얼굴이 낯설어 보이는 감정의 지점을 캔버스에 담아 하나의 얼굴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소용돌이치는 자연의 흔적을 담은 양경선의 작품들은 자의식이 소멸될 만큼 무언가에 빠진 상태를 표현했다.
5명 작가가 표현한 상흔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익숙한 경험이다. 생경하지 않은 풍경을 통해 내 상처와 마주하며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실에 순응하며 좀더 유연하게 상처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전시를 통해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문의: 031-252-9194, blog.naver.com/hmoa2013)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