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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깃든 기억 공간 모두의 공감 장소 돼야

누군가 겪어어만 했던 슬픔·고통·비극
역사 현장으로 고스란히 되살려야 강조
건축화된 현장서 타인의 고통 이해해야

 

남영동 대공분실 5층에는 다른 층에 비해 훨씬 좁은 19개의 창문이 있다. 팔 하나를 겨우 내밀 정도인 이 창문들은 ‘고문실’이라는 용도를 은폐하고 투신자살을 방지하는 동시에 건물 입면 비례를 감안한 미적 측면까지 고려한 설계의 결과물이다. 고문실 출입문들은 반대쪽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엇갈리게 배치됐다. 고문실 벽에는 소리를 흡수하는 타공판이 부착돼 있는데, 목재를 사용한 탓에 고주파수의 비명소리가 벽을 타고 옆방으로 전달된다. 대공분실에 끌려온 ‘피의자’는 눈이 가려진 채, 암흑 속에서 울리는 발소리와 욕설을 들으며 공포감 속에서 고문실로 들어선다. 이 건물은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이탈리아에서 도시와 건축 그리고 공간에 관해 공부하고 2014년 한국에 돌아온 건축가 김명식은 공간의 인문, 사회, 미학적 의미와 가치를 찾는 일에 몰두했고, 시민들과 ‘사회적 고통과 기억의 공간: 아픔의 건축과 도시 읽기’ 답사를 진행했다.

우리 역사의 아픔이 서린 공간과 건축물을 답사한 이들은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를 통해 결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켠을 소개한다. 책은 김근태가 전기고문을 당하고 박종철이 물고문을 당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작으로 2장에서는 ‘고통의 기억이 만들어낸 건축적 공간’이라고 정의한 평화의 소녀상을 소개한다. 저자는 소녀상의 조형적 특징과 상징,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비상식적 풍경, 이 공간의 건축적 의미와 가치 등을 풀어낸다.

3장에서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다룬다. 근대적 일망감시 체계인 ‘파놉티콘(원형감옥)’의 형태와 옥사에서 사형장에 이르는 건물 배치를 상세히 설명한다. 이후 서소문 순교성지를 둘러보며 이 일대가 조선시대 행형장의 중심이 됐던 유래를 되짚는다. 동학 지도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참수됐던 비극의 장소가 특정 종교에 의해 대표돼서는 안 되며, 역사의 현장으로서 이 땅의 무늬와 결을 고스란히 되살려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베를린에 있는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를 상세하게 다루며 서울도서관 3층에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공간도 빼놓지 않는다. 총 4장에 걸쳐 여덟개의 공간을 소개하는 책은 공간의 구조와 배치, 동선 등이 상세히 서술하면서도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감의 메시지를 잊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은 우리 중 누군가 겪어야만 했고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슬픔, 고통, 비극을 함께하며, 그 기억이 공간화되고 건축화된 현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려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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