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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해미읍성 산책 2

 

 

 

지난 여행에 이어 오늘도 해미읍성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해미읍성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읍성으로도 유명하지만 성지순례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2014년 프렌치스코 교황이 다녀감으로써 그 유명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해미읍성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땅으로 ‘천주교 박해’의 현장이 되었던 곳이다.

해미가 있는 내포지역은 충청도에서 선진문물이 가장 빨리 전파되는 곳이었다. 18세기말 천주교가 유입되면서 이 지역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쇄국정책을 단행했던 흥선대원군은 천주교인들을 박해했는데, 이 천주교박해를 통해 해미지역에서는 1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하게 된다.

그 역사의 산증인이자 박해의 중심에 서게 된 나무가 바로 해미읍성의 호야나무이다. 호야나무는 해미읍성 옥사 앞에 자리하고 있다. 천주교 신자들은 이곳 해미영에 끌려와서 감옥에 갇히고 더러는 이 호야나무에 묶여 고문을 당하고 목매달려 죽기도 했다. 김대건 신부도 이 나무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호야나무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는 당시의 철사줄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나, 육안으로 찾아보기는 어렵다.

호야나무 앞으로 자리한 옥사로 발길을 재촉해 보자. 이 옥사는 기록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1790년부터 100여 년간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투옥하였던 곳이다. 이곳은 원래 해미영의 감옥자리로 실제로 감옥 안에 천주교인들이 갇혔던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었다. 감옥 마당에는 형틀이 전시되어 있다. 가끔은 여행객들이 형틀에서 장난삼아 고문의 한 장면을 흉내내기도 하지만, 천주교박해 당시의 역사를 떠올린다면 쉽지 않은 행동들이다.

해미읍성 안에는 읍성을 다스리는 관아가 있다. 관아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필히 외삼문을 통과해야 한다. 지금이야 외삼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좌우로 창검을 든 군사들이 늘 지키고 있었다.

외삼문은 3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오른쪽문은 고을의 양반들이 드나들 수 있었고, 왼쪽은 고을의 평민들이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가운데 문은 읍성의 수령인 사또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이 외삼문은 원래 읍해루라 하였으나 1970년대 복원하면서 호서좌영(湖西左營)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외삼문을 통과하면 읍성을 다스리는 수령인 현감이 사무를 보는 ‘동헌’이 비로소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는 장소이다. 동헌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내아는 조선시대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살림집이다.

이제 해미읍성의 숨겨진 장소로 발길을 돌려보자. 하늘로 가는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면 장승동산이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앞을 바로 본 순간 눈에 들어오는 장승들이 인상적이다. 역대 대통령의 장승이 하나하나 조각되어 줄을 이루고 있다. 이 장승동산은 태풍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해미읍성 소나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해미읍성과 역사를 함께한 소나무를 의미 있게 활용하고자 장승동산을 계획하여 만들었다.

제1대 대통령 고 이승만 대통령을 포함해 하나같이 역대 대통령과 모습이 흡사하면서 각각의 특색을 살려 조각되어 있다. 이 대통령들의 모습에서 재미있는 사실이 눈에 띈다. 조선시대 임금이 쓰는 익선관을 착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익선관을 쓰고 한껏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 덩달아 미소 짓게 된다.

장승동산을 지나 청허정으로 자리를 옮긴다. 청허정은 처음 성종 22년에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가 세웠던 정자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이 자리에 신사를 만들어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청허정은 2011년 새로 지은 것이다.

해미읍성은 동전처럼 양면을 지닌 문화유적지이다. 평화로운 읍성의 생활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천주교박해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해미읍성 산책을 통해 해미읍성의 양면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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