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정도전은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귀족들이 거느린 사병(私兵)을 혁파하고 공병(公兵)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국가에 걸맞는 강력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진법’이라는 병서를 펴냈다.
세종대왕 역시 즉위했을 당시,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작업의 일환으로 군대의 역사를 통합 정리한 ‘역대병요’를 썼고 이후 중국의 전쟁사가 중심이었던‘역대병요’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문종 대에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 전쟁사를 모은 ‘동국병감’이 편찬됐다.
병서(兵書)는 말 그대로 병(兵) 즉, 군대와 군사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군사들이 사용하는 무기나 전술 뿐만 아니라 군사를 통제하는 장수의 마음가짐, 군사의 훈련과 생활에 관한 내용까지 담은 병서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안전하게 대비할 수 있기에 당대의 지도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책이다.
‘병서, 조선을 말하다’는 병서를 통해 조선시대를 살펴본 책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주요 병서들을 소개하며, 병서에 반영된 조선의 모습을 생생하게 읽어낸다. 군대의 조직과 전술, 군사들이 사용한 무기, 조선에 영향을 미친 주변국들의 변화까지 폭넓게 조망하며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환란을 이겨내고 혁신을 이뤄냈는지 살펴본다.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다양한 병서들 가운데 정통성의 한계를 병서 간행으로 극복하려 했던 정조의 일화도 책에서 소개된다. ‘문치규장무설장용(문은 규장각으로, 무는 장용영으로 다스린다)’을 내세워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정조는 장용영 설치와 함께 다양한 병서의 편찬으로 구체화됐고 사도세자가 만든 ‘무예신보’에 마상무예 6기를 더해 ‘무예도보통지’를 간행했다.
헌종과 철종이 세도정치에 빠져들고, 외부로는 이양선의 잦은 출몰, 내부로는 쉼 없는 민란이 일어났던 조선 말기에도 병서는 간행됐다.
조우석이 집필한 ‘무비요람’은 중국 병서의 핵심을 모은 백과사전으로, 군사를 다루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방법이 들어 있다.
또한 흥선대원군의 집권기에는 신헌이라는 걸출한 무인이 ‘훈국신조군기도설’과 ‘훈국신조기계도설’를 편찬했다.
‘훈국신조기계도설’은 신식 무기를 어디서든 제작할 수 있도록 자세한 제작법을 담은 실용적인 병서였다.
조선이 일본에 강제로 병합된 뒤에도 병서 간행은 멈추지 않았다.
한일병탄 2년 전인 1898년에는 무관학교 교관을 중심으로 근대식 군사훈련을 위한 ‘보병조전’이 편찬됐고, 여기에 수록된 군사훈련과 전술훈련은 이후 만주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훈련에도 활용됐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