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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남한산성을 가다 2

 

 

 

‘남한산성’이라는 이름은 백제 온조왕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울긋불긋 붉은 단풍들 사이로 이어지는 성곽길은 끝없는 시간여행을 부추긴다. 남한산성의 회색의 성곽길은 화려한 단풍과 대비되어 한층 더 기나긴 역사를 부각시키는 듯하다. 회색과 오색단풍의 절묘한 만남. 남한산성을 가장 아름답게 만날 수 있는 시기이다.

남한산성에서도 가장 높은 곳 수어장대로부터 오늘 여행을 시작해보자.

수어장대는 남문과 서문 사이에 자리해 있다. 남한산성에서 위치가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있어서 산성의 성내는 물론이고 성 밖 멀리까지 살피고 감시하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래서 수어장대는 장수의 지휘소 겸 감시시설이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과 외성의 외동장대까지 모두 5개의 장대가 있었다. 그중 서쪽을 방어하는 장수의 지휘소가 바로 수어장대이다. 지금은 나머지 장대는 모두 없어지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수어장대이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은 기단 위에 수어장대가 있다. 수어장대 위로 올라서는 계단도 자연석으로 눈길을 끈다. 2층의 수어장대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늠름한 자태를 뽐낸다. 이맘때가 되면 단풍으로 물든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한층 더 멋스러움을 자랑한다.

수어장대 앞으로는 비교적 넓은 마당이 자리한다. 간단한 군사훈련도 가능한 그런 곳이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임금께서는 이곳에서 직접 지휘를 하며 군사를 독려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수어장대의 원래 이름은 서장대였다. ‘수어장대’라는 이름은 영조임금 때 시작된 것으로 영조 임금은 이 서장대를 고쳐 안쪽은 ‘무망루’, 바깥쪽은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걸었다. 무망루는 병자호란의 치욕과 원한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영조임금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을 겪은 인조와 청나라로 볼모로 잡혀가 8년을 보내고 돌아와 끝내 북벌의 한을 풀지 못하고 죽은 효종의 원한을 되새기자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영조는 수어장대를 증축하고 편액을 하사하고는 남한산성에 들렸다. 곧장 수어장대로 오른 임금은 신하들과 병자호란 당시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날 저무는 것조차 잊으셨다. 기나긴 시간이 지나도 이 곳은 우리에게 아픔인 것을, 당시 영조임금에게 느껴지는 고통의 크기는 얼마였을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수어장대 마당 한쪽에는 ‘수어서대’라는 글자가 새겨진 매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장군바위라고도 불리는 이 바위에는 산성을 쌓을 당시의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남한산성 축성 총책임자 이서는 이회와 벽암대사에게 각각 구역을 나눠 성을 쌓도록 하고 일을 마무리할 기한을 정해 주었다. 그러나 기한 내 마무리한 벽암대사와 달리 이회는 기한 내 마무리를 하지 못했는데 이를 두고 이회가 공금을 남용하고 축성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이회는 군령에 의해 즉시 참수당하고 만다. 이회는 참수당하기 직전 자신이 죽는 순간 매가 날아온다면 죄가 없는 것이고 날아오지 않는다면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것으로 알라는 말을 남겼다. 이회가 처형이 되는 날 거짓말처럼 어디에선가 매 한 마리가 날아와 바위에 앉았다는 이야기다.

이회는 성을 기초부터 치밀하고 견고하게 쌓느라 기한을 못 지킨 것이었다. 공금을 탕진했다는 것도 모함이었다. 그러나 이회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족한 공사자금을 구하러 팔도를 돌며 쌀을 모아 남편을 돕던 부인이 남편이 처형당한 것을 알고 자결하고 말았다.

억울하게 죽은 이회 부부를 위해 ‘청량당’을 세워 그 넋을 위로하고 있다. 청량당은 서장대를 돌아 돌계단을 내려오면 자리하고 있다. 청량당에는 이회장군 부부와 함께 벽암대사의 초상화도 함께 모셔져 있다. 벽암대사는 병자호란 당시 승군을 이끌고 용맹하게 싸웠으며, 임금이 투항을 지켜본 벽암대사는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이를 애석하게 여겨 그의 영정도 이곳에 함께 봉안을 한 것이다.

남한산성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들여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여행을 해보는 것도 남한산성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올가을이 가기 전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남한산성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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