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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松시선]진법에 나타난 세종시대의 역동성

 

올해는 세종이 조선의 4대 왕으로 즉위한 지 600년이 되는 해이다. 손무의 ‘손자병법’이나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현대의 기업이나 각종 조직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 고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세울 병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면 우리나라의 병학(兵學)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늘 안타까움을 느낀다.

전쟁은 사람의 생사는 물론 나라의 존망을 결정짓는다. 따라서 전쟁을 다루는 학문, 곧 병학은 피와 아우성을 바탕으로 정립된 학문이다. 따라서 병서는 처음부터 실학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줄지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장사진’이라 표현하고, 충무공을 생각하면서 ‘학익진’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진(陣)’이라는 용어는 현대에도 가끔 접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진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세종시대의 남자들에게 ‘진법’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익혀야 했던 생존기술이었다.

‘계축진설’은 세종 15년(1433) 7월에 하경복이 편찬한 진법서이다. 이 책은 제1차 파저강 정벌 직후에 편찬된 것이다. 이보다 먼저 정도전, 이제현, 변계량이 지은 병서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문신이다. 무과 출신으로 김종서, 최윤덕과 함께 북방 개척의 핵심이던 하경복 장군이 이 책의 편찬을 주도했다는 사실도 세종의 국가경영과 관련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계축진설’은 행진, 결진, 교장, 군령, 응적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진은 군사들의 행군요령과 이동할 때 군사들의 편제, 행군간 부대 신호 등의 방법이다. 결진은 방진, 예진, 원진, 곡진, 직진의 다섯 가지 진을 치는 방법과 신호체계, 진을 치는 중의 예비대의 운용법이 들어 있다. 군령은 군사들에 대한 신상필벌을 다룬 부분이며, 응적은 진을 친 상태에서 적과 전투할 때 대응 방법이다.

다섯 중에서 응적편이 가장 흥미로운데 ‘조운진(鳥雲陣)’이라는 진법 때문이다. 조운진은 마치 ‘새가 날아 흩어지고 구름이 모이듯’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세종 16년(1434) 4월 26일, 함길도 감사와 도절제사가 세종에게 여진족의 전술이 “새처럼 흩어지고 구름처럼 퍼져 일정한 항오를 이루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세종의 대답이다.

“조운진은 산천이 험하고 좁아서 대열을 이룰 수 없는 곳에서 쓰는 것이므로 그 항오(行伍)를 성기게 하여 흩어져서 적을 막게 되어, 사람들이 각자가 싸움을 하되 거의 그 항오를 잃지 아니하고 각각 그 맡은 바 임무를 되풀이하여, 조금도 파진(破陣)되거나 군사를 잃을 근심이 없다….”

세종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병법은 늘 상대적이다. 방패로 보호하면서 근접전을 피하고 멀리서 활을 쏘는 여진의 전술을 격파하기 위하여 개발된 진법이 조운진이다. 조운진은 상황에 따라 기병이 말에서 내려 보병과 같이 전투하되 방패로 군사를 보호하면서 멀리에서는 화통과 활을 쏘다가 적과 맞붙게 되면 창검으로 제압하고, 적이 달아나면 말을 타고 추격하는 역동적인 전술이다. 운신의 폭이 좁은 산악 전투에서 총통과 화포를 적극 활용하고 퇴각할 때는 기병이 추격하여 전투력을 극대화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계축진설’은 여진족의 유연한 전술체계를 의식하면서 모방과 극복의 전술을 담아냈다. 세종은 이 책을 전국에 보급하였다. 중앙군은 물론 지방군도 이 책을 바탕으로 매월 3차례 진법을 익혔다.

정리하자면, 조선은 고려 말에 소개된 몽골과 여진의 전술체계에 전통의 궁시와 화약무기와 창검을 결합한 새로운 전술을 『계축진설』에 담아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세종대의 대외적, 군사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을 모범으로 삼았던 정조는 ‘무예도보통지’의 머리말에서 진법을 이렇게 말했다.

“멈출 때는 담장처럼 굳세고 움직일 때는 비바람 같은 것이 진법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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