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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눈사람의 상처

눈사람의 상처

                          /이정록

삽날에 잘린 눈사람을 어루만진다

삽질 속에 결을 만들어 놓은 흙 부스러기

때문에, 삽날이 지나간 자리가 꽃등심처럼 곱다

아름다운 것이 이렇게 무서울 수가 있구나

등을 찍혔는데도 무늬를 보여주는 눈사람

저 흙길을 따라가면 서걱서걱 기저귀 얼어 있던 안마당

또 배가 불러오던 어머니를 만날 것 같다

마음 짠해서 어둠을 밝히는 눈송이들

왱이낫이 박힌 옹이 많은 옛길을 덮는다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겹겹 붕대를 두른다

삽날이 지나간 눈사람. 그 흙밥의 나이테를 어루만진다

- 이정록 시집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우리는 언젠가는 사라질 눈사람이다. 팔과 다리가 한 덩어리로 뭉쳐진 눈사람처럼 형체를 드러내고 살고 있지만, 서서히 무너져 없어질 존재들이다. 시인은 그러한 우리네 삶의 일부 중 각인된 어느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얗게 눈이 내리는 날, 삽날에 잘린 눈사람을 어루만진다. 등을 찍혀 무늬를 보여주는 눈사람. 그 상처에 박힌 흙 속에는 서걱서걱 기저귀 얼어 있던 안마당이 있다. 그리고 또 배가 불러오던 어머니가 있다. 언제 떠올려도 그 시절은 마음 짠해진다. 그러나 쉽사리 잊히지 않는, 지나간 시간은 다시 보면 꽃등심처럼 곱다. 삽날이 지나간 자리처럼 무서운 것도 아름답다. 그리하여 우리는 눈이 오는 날이면 어둠을 밝히는 눈송이처럼, 왱이낫이 박힌 옹이 많은 옛길을 덮는 것처럼, 누군가의 나이테를 한 번쯤 어루만져볼 일이다.

/서정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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